“청바지와 삶의 여러 에피소드가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옷을 소중하게 입는 것.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마음으로 바라는 일입니다.”
글로벌 청바지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그래스그로운(Grass Grown)’ 백승빈 대표가 독립 창업하며 내세운 아이템은 ‘생지(生地)데님’. 워싱, 탈색 등의 기교 없이 순수한 원단의 질만으로 값이 매겨지는 청바지다. 입으면서 ‘자연 워싱’이 되고 시간에 의한 페이딩을 통해 자신만의 멋이 생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입은 사람의 체형과 착의 습관에 의한 변화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멋이 생기는 생지데님은 원단의 질이 중요합니다. 밀도감, 염색기법, 컬러감 등이 우수한 원단이 멋을 잘 만들기 때문입니다.”
원단의 염료가 고착되기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 기간 동안에는 일반 세탁이 불가하다. 실제로 에어워시 외에 일반 세탁을 반영구적으로 하지 않는 소비자도 있다. 옷을 빨지 못하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니아층이 존재한다.
“생지데님은 캐주얼 복장, 댄디 복장 모두 어울립니다. 코디할 때 무난하게 매치할 수 있어서 직장인이 많이 선호합니다. 그리고 입을수록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점을 특히 좋아해서 디자이너보다 더 많은 이론 지식을 가지고 구매 문의해오는 분도 많습니다.”
패션 트렌드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때에 가치와 멋이 드러나기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필요한 패션임에도 백 대표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창업 반 년 만에 서울의 유명한 패션 거리에 입점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부러운 성과’라고 말한다.
“‘소재 하나 좋은 것’으로 밀고 나갔는데 생각보다 자리를 빨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일할 때 많은 메커니즘을 배우고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이 사업 운영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업계에서 인정할 정도로 빠르게 입지를 다지고 있지만 아이템 고유의 특성상 백 대표는 ‘천천히 가자’고 다짐한다. 자신의 패션을 ‘슬로우 패션’으로 지칭하는 백 대표는 어린 시절 곤충학자 ‘파블로’를 꿈꾸며 그렸던 ‘자연’에 대한 이미지를 옷에도 적용한다.
“큰 규모와 대량 생산, 정해진 시즌에 맞춰진 작업이 아닌 디자이너가 원하는 시기에 즐겁게 일하면서 적은 아이템을 소량 생산하는 패션입니다. 인위적이고 치열한 마케팅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프로세스를 추구합니다.”
시간을 통해 생지데님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멋과 가치는 대기업의 울타리에서 독립해 보다 즐겁게 일하고 내가 만든 옷에 더욱 많은 공을 들이는 백 대표의 삶에도 배여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