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으로 황폐화가 되었던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이 삶의 터전을 잃으며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굶주림과 빈궁에 시달리던 안타까운 과거 속에서 전쟁고아들을 위해 헌신했던 정신을 간직한 곳이 있다. 강원도 춘천의 외곽, 산천의 푸름에 둘러싸인 그곳은 이제 장애인들을 돌보는 장소가 돼있었다.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강원재활원. 약 80명의 지체, 지적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는 이곳은 지난 1984년 설립됐다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처음으로 탄생한 장애인재활원이다. 강원재활원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6·25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사람은 바로 현재 강원재활원을 운영하고 있는 홍기종 원장의 아버지다.
홍기종 강원재활원장은 “아버지께서 6·25전쟁고아들을 하나 둘 거두어 돌보았는데 그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고아원 형태가 됐었다”며 “그 당시 교회나 절 등에서 전쟁고아들을 일부분 수용했는데 그들도 빈궁한 건 마찬가지다 보니 모두 다 받을 수는 없었고 그 나머지를 아버지가 거뒀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후로 70년대 후반부터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며 “아버지가 해오던 고아원이 시초가 돼 국가지원을 통해 장애인재활원이 강원도에 처음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아버지의 사회사업을 물려받아 홍 원장이 봉사에 뼈를 묻은 빤한 스토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좀 다른 점이 있다. 수십명이 넘는 식솔을 혼자 책임져야했던 상황 속에서 홍 원장은 아버지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 지원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경제적인 책임을 아버지가 떠안았다고 생각하니 홍 원장이 느꼈을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홍 원장은 “어릴 적 고아원에 들어온 아이들은 가족과 다름없었다”며 “당시 상황에서는 그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없었다. 구타도 많이 당하면서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홍 원장은 성인이 됐을 때 교직에 몸을 담고 집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보고 큰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교직생활을 접고 다시 강원도로 돌아오게 됐다고 한다. 봉사에 대한 가치의 무게가 알게 모르게 몸에 새겨져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홍 원장은 “우리 집안에 사회복지사가 총 12명이다. 그중 형제 5명이 포함돼있다. 그만큼 보고 자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춘천으로 돌아와 2~3년 정도 필요한 일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사회복지에 전념하게 된다. 아버지의 의지가 담긴 강원재활원을 맡게 되며 중증 장애인을 위한 시설, 직업훈련소 등을 갖춘 남강재단을 설립하며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를 펼쳤다. 현재 강원도 지역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정통한 복지가로 이름이 나있다.
홍 원장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장애인들이 일반인들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돌봐줘야 한다는 인식을 가졌지만 지내다보니 인성적으로 더 훌륭한 부분이 많은 등 함께 생활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단지 그들에게 결핍돼있는 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이 바로 사회복지사들이라고 홍 원장은 말했다.
홍 원장은 장애인을 말 그대로 ‘장애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편적으로 장애인하면 도와줘야한다는 인식을 버리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한다는 것이다. 홍 원장은 최근 학계를 비롯한 주위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이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연구하는 기관을 설립할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그는 또 체계적인 장애인 복지시스템 구축에 대한 필요성을 제시했다. 재활원이 설립된지 30년이 지나며 초기에 입소한 장애인들이 노년이 됐는데 그들이 있을 만한 곳이 현재 마땅치 않다는 것이 홍 원장의 설명이다. 그들이 노인요양원으로 가는 경우가 있는데 장애인이다 보니 다른 노인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고 또 그들의 일과를 소화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아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된 장애인들과 아동을 함께 놓고 일과를 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재활원에서의 한정된 인력을 갖고 프로그램을 달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홍 원장은 “지체 장애인은 머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재활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지만 지적 장애인들은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며 “그들을 위한 체계적인 시설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적 장애인들은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운동”이라며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운동 선생님이 필요한데 그런 복지사도 배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복지법인들은 예산 대부분이 국가의 지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법에 명시돼있지 않은 필요인력은 임금을 국가로부터 받을 수 없고 자체 채용하기에는 대부분 법인들이 경제적 상황이 넉넉지 못하다.
홍 원장은 마지막으로 직원들과 남은 여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강원재활원에서 함께 20년 이상 희로애락을 나눴던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또 특색이 서로 다른 복지사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주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홍 원장은 “적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애써줬던 직원들을 보면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며 “은퇴 후 어디 노인요양원을 만들어서 내가 먼저 들어가고 그들이 하나 둘 와서 함께 노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