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해가 뜨는 것은 여명(黎明)이다. 새벽에 희망의 해가 뜨고 그 해는 아침을 밝힌다. 아이들의 자립을 꿈꾸고 시설이 사랑과 힘으로 계속해서 건강하게 나아가는 곳. 포천 해 뜨는 집은 그런 곳을 지향하고 실행한다.
이곳은 지적장애인 생활시설이고 설립된 지 16년째다. 정미숙 원장은 처음 주간보호로 시작했다. 포천에 낮 동안 돌봐 주는 이가 없는 아이들을 무료로 돌보기 시작했다. 부부가 스트레스 받고 해체되고 이혼으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생기면서 시설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시설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소중한 프로그램은 부모님들의 정기적인 모임이다. 시설에 오십 프로는 부모가 있고 오십 프로는 없다. 가족이 있는 부모가 오면 없는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결연 가족을 만들어 똑같이 모인다. 회비도 내고, 올 때마다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의사표현이 가능한 친구들은 하고 싶은 얘기, 개선시킬 얘기를 하고 반영해서 욕구를 해소시키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한다.
결연 가족은 해 뜨는 집에 애정 있으신 분들이 흔쾌히 결연 가족이 되어 주셨고 더 열심히 한다. 오히려 결연 가족을 보고 혈연가족이 따라서 하게 된다. 이 가족이 연계돼서 아이들의 정서적인 안정이 향상된다. 아이의 상처 때문에 아이를 잊고 싶어 관계를 단절시키는 부모도 많다. 죄책감을 가지고 평생 사느니 아이들과 관계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 원장의 남편은 중증 장애인이다. 대학 때 만나서 결혼했을 때 주변 시선이 굉장히 안 좋았다. 시어머니를 보면서 장애인 가족의 고통을 보았다.
애정은 고통을 동반한 보람과 희망이다.
가족이 겪는 고통은 생각보다 크다. 정 원장은 “남편이 가족과 분리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 했다. 남편이 힘든데 어떻게 다른 아이도 돌보나 했는데, 시설을 하고 나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 남편이 하고 싶은 만큼 분리되지 않고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꿈이 있다.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통로가 되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한 자폐 아이가 밤에 소리 지르고 이웃에 피해를 끼치고 하니까 부모가 이혼하기로 하고 왔다. 정 원장은 그 아이의 행동을 수정할 수 있을까 굉장히 고민했다. 특수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공부한 걸 토대로 열심히 봉사했다. 아이가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졌다. 그리고 부모는 이혼을 안 하게 되었다. 이걸 통해서 가정을 지켜 줄 때 가족의 관계가 유지될 때 보람을 느꼈다. 중증 아이가 나아지고, 전신마비인 사람이 말을 하고 개선이 되고 감정을 전혀 표현 안 하던 애가 표현을 할 때 정 원장은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
시설 서비스는 사람에 의한 서비스다. 사람에 의해 시설이 달라진다. 평균 종사자 연령이 오십 후반에서 육십대다. 이유는 종사자 인건비가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장애인의 특성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면 사회복지를 전공했거나 장애에 대해 아는 사람이어야 서비스 질은 달라진다. 사회복지는 개별화를 원하는 것이고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한 주체는 사람이다.
정 원장은 “똑같은 장애인인데, 개인과 법인이라는 운영주체에 따라 따라서 서비스가 달라진다. 아이들이 차별되는 건 잘못된 것이다. 개인으로 운영하는 게 죄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열심히 뛰었지만 한계를 뛰어 넘기 어려웠다. 큰 기업체는 법인을 지원한다. 개인 운영은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 각인되어 지원을 꺼려한다. 기업 지원을 받기 위해 다녀봤지만 기업의 방침이 법인에게 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인권 문제는 법인에서 많이 발생한다. 개인도 있지만 운영하는 마인드에 따라 법인이든 개인이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앞으로 개인운영시설은 없어지고 법정시설로 다 전환된다. 그동안 개인 운영이라 지원이 어려웠다. 해 뜨는 집에서는 이에 맞춰 사회복지 자격증과 시설 환경을 갖추었다. 종사자들도 법적인 수준을 갖추라고 해서 그것도 갖췄다. 법정시설로 전환 시에는 인건비 관리비를 주게 되어 있는데 아직도 경기도는 미온적인 태도다.
정 원장은 “아이들은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직업이다. 취업할 수 있는 것을 연계해서 백 프로 자립은 아니라도 부분적인 자립이라도 자기 공간을 해주고 싶다. 공동으로 사니까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못할 때가 있다.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러한 통로가 없다. 자립이 가능한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살 수 있게 하고 싶다. 아이들을 거의 학교에 보냈고 졸업해서 취업이 가능한 아이들은 취업을 해서 다양한 인맥과 다양한 사람과 지역 사회에 스며들어서 살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