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6일 형법상 간통죄에 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성(性)과 사랑’이라는 사적영역에 국가의 형벌권이 지나치게 개입해선 안 된다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헌재는 간통 행위 자체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어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봤다. 형벌로 애정을 강요하면 과잉 처벌이어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아울러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내밀한 관계에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안 돼
헌재는 간통죄가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부부의 내밀한 관계에 형벌권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간통죄에 대해 ‘위헌’ 의견을 낸 박한철 헌재소장 등은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 한다”며 “형벌을 통해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혼인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것을 형벌로서 제재하는 것은 물론 혼인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제재 대상으로 삼는 것 역시 과잉 처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이수 재판관은 “모든 간통 행위자 및 상간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형벌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정도를 일탈,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국가 형벌권의 과잉행사”라고 밝혔다.
◇간통죄로 애정 강요할 수 없고 실효성도 없어
헌재는 간통 행위 자체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에 형벌권을 행사해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개인의 사적 영역에 대한 침해라고 강조했다. 법률이 도덕 규범에 맡겨야 할 영역까지 침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 소장 등은 “우리의 생활영역에는 법률이 직접 규율할 영역도 있지만 도덕에 맡겨둬야 할 영역도 있다”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위 모두를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간통을 형사처벌한다고 해도 실효성이 없다고 봤다. 간통죄로 접수되는 사건 및 기소되는 사건의 수가 매년 줄어들고 있고, 간통죄로 구속기소되는 경우 역시 고소 사건의 10%에도 못 미치며,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고소가 취소돼 공소권 없음 또는 공소기각으로 종결되는 사건이 상당수에 이르러 형벌로서의 처벌 기능이 현저히 약화됐다는 것이다.
헌재는 오히려 간통죄가 협박이나 위자료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간통죄가 구체적 사안의 개별성이나 특수성을 배제한 채 징역형만을 규정하고 있어 책임과 형벌간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도 봤다.
◇결혼과 성에 대한 국민 의식 변화…세계적인 추세에도 맞아
헌재의 판단은 결혼과 성은 형법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사적인 문제라는 사회 인식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간통죄로 보호받는 사회질서와 공공의 안녕이라는 공익보다 성과 사랑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개인적 법익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공감대가 반영된 셈이다.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고 있는 추세라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 2000년대 두 차례의 헌법재판에서도 간통죄 폐지가 세계적인 시대 흐름이라는 점은 인정된 바 있다.
헌재는 다수 의견을 통해 “비록 비도덕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크지 않거나 구체적 법익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없는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게 현대 형법의 추세”라며 “이와 같은 추세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간통죄는 폐지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