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로운 2020년대를 맞아, 4차 산업혁명을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이뉴스코리아 박은혜 칼럼니스트]

바퀴벌레와 지구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

바퀴벌레는 아시아의 다른 지역들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동물이다. 바퀴벌레가 번식하는 과정은 꽤 흥미로운데, 교미를 하면 꼬리부분에 커다란 주머니가 생긴다. 그 주머니가 나중에 터지고 나면 그 안에서 새끼들이 우르르 튀어나오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바퀴벌레 한 쌍이 1년에 40만 마리의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바퀴벌레는 못 먹는 게 없다. 나무든 플라스틱이든 가리지 않는다. 굶어도 삼 개월을 살 수 있고, 물 없이도 한 달을 버틸 수 있다. 48시간을 냉동해도 살아남는다. 바퀴벌레의 이러한 생존력이라고 하는 것은 지구상의 생명체들 중 매우 탁월한 수준에 속한다.

바퀴벌레가 매우 좋아하는 공간들 중 하나는 배다. 무역선이든, 해군 함대이든, 바다에 오래 떠 있는 배 안에 바퀴벌레 한 마리라도 들어가면 그 증식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여간 문제가 아니다. 특히 온갖 병균을 옮기고 다니기까지 한다. 이에 미국 해군은 함대의 바퀴벌레 문제를 해결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수컷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암컷에 달린 새끼 주머니가 그대로 시들어버리도록 만드는 실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 무릎을 꿇은 쪽은 미국 해군이었다. 인간이 그토록 바퀴벌레를 박멸하려는 시도를 해왔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참고로 발트 해 지역에서 발굴된 바퀴벌레의 화석은 대략 3억 2천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무려 공룡의 등장보다 1억 년을 앞서는 연대인 것이다. 우리 인류 종의 역사를 아무리 길게 잡아야 3백만 년 정도로 추정되고 우리와 가장 유사한 크로마뇽인의 역사는 기껏해야 3만 년의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바퀴벌레의 입장에서 자신들에 비해 고작 1/100밖에 안 되는 역사를 지닌 인간이 자신들을 박멸하려고 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워 보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바퀴벌레의 역사를 지구 전체의 역사에 비교해 본다면 1/15도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요즘 많이들 논의되고 있는 소위 빅히스토리(Big History)의 관점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또한 이 관점에서 인간의 역사라는 것에 대해 우리 자신이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바퀴벌레만큼은 아니지만 공룡도 지구상에서 1억 5천만 년 이상을 살았는데, 겨우 3백 만년을 살아온 인간이 도대체 공룡이 왜 멸종했는가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것은 더욱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지구상에서 공룡만큼의 시간을 살아남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공룡이 왜 멸종했는지를 고민하기보다 우리가 그들처럼 장구한 세월을 지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욱 절실한지도 모른다.

사진출처=픽사베이

2020년대의 시작점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4차 산업혁명

2020년이 시작되었다. 단순한 2019년의 끝은 아니다. 무려 2010년대가 끝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21세기가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21세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편들이 존재한다고나 할까? 20세기와는 분명히 단절된 그 무언가가 군데군데 보이는데 그 중 하나가 4차 산업혁명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바퀴벌레의 역사처럼, 2020년의 시작을 맞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구 전체의 역사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의 역사, 그리고 그 인간의 역사 안에서도 매우 짧은 시간에 불과한 우리 삶의 역사를 직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에게 4차 산업혁명이 도대체 어떤 의미도 다가오는 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4차 산업’과 ‘혁명’이라는 단어로 인수 분해될 수 있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인수는 혁명이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단어, ‘혁명’. 과연 혁명이란 무엇일까? 가죽 혁(革)자가 포함된 한자 단어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혁명(革命)이란 명(命)을 무두질 하는(革) 것이다. 가죽을 무두질하면 가죽의 성질이 바뀌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곧 혁명이란 변화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 엄청난 변화의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혁명이란 단어를 정치적 이벤트에 국한하여 이해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혁명에 비교적 친숙하다. 옆 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는 역사 속에서 혁명이라 불릴 만한 사건들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혁명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혁명에는 혁명의 주체세력이 필요하고, 그 주체세력이 바꿔놓은 변화가 뒤따라야 비로소 성공한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진정한 혁명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혁명의 주체세력이 백성 모두를 대변하지 못하거나, 혹은 뒤따르는 변화가 그저 시도에 그쳤던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진정한 혁명은 그저 정치적인 이벤트가 아니다. 혁명은 정치지도자들을 물갈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념체계, 문화, 친족관계, 심지어 복식, 주거, 생활방식까지도 바꾸어놓는, 훨씬 깊이 있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더 나아가 인류 전체는 어쩌면 진정한 혁명을 처음으로 맞이하려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빅히스토리의 관점으로 우리의 시각을 넓혀본다면, 1차, 2차, 3차, 4차 산업혁명까지 모두 합쳐봐야 그 기간은 30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극히 짧은 순간이다. 이 짧은 순간에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돌아봤을 때, 냉장고로 음식을 저장하고, 언제나 따뜻한 물이 나오고, 밤에도 환한 불빛을 누리는 것 모두가 불과 5~60년 동안의 극적인 변화였다.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근대화되기 이전의 모습, 부모세대가 여전히 기억하는 삶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당시의 집의 구조나 에너지 사용 방식만 놓고 보아도, 고조선 시대의 삶의 모습과 거의 연속선상에 있어왔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것들은 말 그대로 진짜 혁명이다. 그리고 이 혁명의 주체세력은 어느 특정한 집단이 아닌, 인류 전체이다.

아마도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은 이러한 전대미문의 혁명이 인류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보다 거시적이고도 겸손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5천 년 전 세워졌던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지구를 휘청거리게 만들 만한 혁명이 아니었다. 반면에,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빌딩 한 채는 피라미드보다 더 많은 해악을 지구에 끼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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