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에서는 알 수 없는 향기가 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할머니의 향기가 나는 것 같다가도 백설기의 푸근하고 달콤한 향에 취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알록달록 다양한 맛이 나는 것 같다가도 이내 조화롭게 온몸에 스며드는 느낌. 사실 한복이란 몇 마디 단어,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존재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동굴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까지 드는 매력을 지닌 옷이며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한국을 사랑하는 세계인이 많아졌다. K-pop 열풍으로 많은 한국의 가수들이 세계인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고 특유의 매콤함과 다양한 맛으로 미각을 즐겁게 하는 한식 역시 외국인들에게 인기다. 또한, 한국을 찾는 이들은 고풍스러운 한옥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보람 있는 일이고 행복한 일인데, 한복을 사랑하는 이로써 뭔가 아쉽고 또 아쉬운 이유는 왜일까.
20년간 한복의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디자인해 온 박은주 대표 역시 한복의 아름다움이 평가절하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한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복의 예술성을 인정하고 칭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늘 의식주 중 음식과 집이 우선이고 활동하기 불편한 옷이라는 편견 가득한 눈으로 한복을 바라보고 있다.
청담동거리에서 한복집을 찾아 헤매다
크림색, 아이보리 색, 생지 색, 염색하지 않은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 그대로의 색. 박은주 대표가 처음으로 반해버린 한복의 색깔이다. 협력학교에서 교수들이 찾아왔던 과거 박은주 대표의 대학교 시절, 한 교수는 한 벌짜리 한복을 입고 그들을 맞이했다. 이를 본 박 대표는 한복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됐고 그 이후 계속해서 한복의 길을 걷고 있다. 그때 당시 인사동에서 혼자 전시하기도 하고 대학원 전시에 자신의 작품을 함께 내달라고 부탁하는 등 어떻게든 자신이 만든 한복을 알리려 힘썼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직접 청담동 거리를 다니며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 당시 한복전문점이라고 불리는 가게들은 포목점, 주단집이라 불리는 곳이었고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가업을 이어가는 시대였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결국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았고 그때부터 박 대표는 매일매일 한복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가며 시간을 보내왔다.
시작한 사업, 변해가는 시대
박 대표는 2016년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직장부터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한복으로 외길인생. 늘 소속돼 있어 못 느끼던 사업의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고 시대의 흐름이 한복을 직접 소장하기보다는 대여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을 몸소 느끼며 박 대표는 서서히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한복은 평상복이 아닌 예복이다. 그렇기에 결혼식 혹 행사에서 쓰이며 맞춤형 한복을 전문적으로 하는 박 대표의 주 고객층은 신랑·신부와 그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최근에는 한복을 대여해 인사동이나 경복궁을 찾는 젊은이도 많이 늘었다. 그녀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청소년층이나 청년층은 한복을 접할 기회조차 많이 없는데, 대여를 통해서라도 한복을 경험한다면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자라 결혼을 할 때, 혹은 다른 어떤 일을 할 때 한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거라고 박 대표는 주장했다. 박 대표는 디자인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예스러움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시대의 흐름에 한복의 디자인을 바꿔가고 맞춰나가며 널리 알리기를 원하고 있다.
전통한복, 현대한복?
개량한복이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는 틀린 말이라고 박 대표는 말한다.
“개량한복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은 표현이죠. 개량이라는 뜻은 나쁜 점이 있는 물건을 고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적합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활한복이라는 표현이 알맞죠. 학계에서는 전통한복과 생활한복, 퓨전한복 이렇게 세 분류로 한복을 나누다가 최근 전통한복, 믹스한복(전통적변형/현대적변형), 현대한복으로 한복을 나누는 추세를 보여준답니다”
현대한복이라고 해서 전통한복에 반하는 디자인이나 색다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한복에 기능성과 활동성을 추가하고 강조한 것이 현대한복의 특징이라고 박 대표는 말한다. 박 대표는 기존의 전통한복을 연구하는 분들은 더 깊이 그 연구를 지속해야 하며 현대 한복 역시 디자인적으로나 기능성 쪽으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며 각자의 분야에서 모두가 노력해야 한복 시장이 더욱 성장하고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한복을 아껴주세요…
한복을 세계로 알리자고 하는 말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투적인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말해도 지겹지 않은 말이고 지겨워한다 해도 다시 해야 하는 말이다. TV 방송 속에서 한복만 보더라도 너무 잘못된 부분이 많은 것이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고름을 메는 방식이 틀린 것은 기본이고 방송에서 입고 나와야 하는 옷이 아님에도 예뻐 보인다는 이유로 그 옷을 입고 예능을 하는 것을 보면 전통적인 부분에서 무지한 스타일리스트에게도,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지만 지적하지 않는 한복인들에게도 불편한 마음이 들곤 한다. 입는 법이 어렵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일본의 경우 한복보다 입기 어려운 기모노를 어렸을 때부터 배운다. 객관적으로 한복보다 기모노가 훨씬 입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 기모노를 접하고 아름다운 옷을 갖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문화를 아이들에게 남겨주며 그들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박 대표는 그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한복을 한 번의 행사용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을 전했다. 소비자와 업계 종사자 혹은 전문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한복을 세계로 또 필요한 누군가에게로
어머니들이 선호하는 전통한복의 경우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아직까지 있지만, 젊은 신랑·신부나 최근 청년들은 다양한 한복 소재의 변화를 선호한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레이스 소재를 쓰고 짧은 치마, 블라우스식의 상의 등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한복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아름다운 의복이다. 박은주 전통한복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한복 의뢰를 하며 주문할 때부터 의상을 받아볼 때까지 이들이 표현하는 뿌듯함은 한복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만족감을 주고 뿌듯함을 준다며 박 대표는 이들에게 고마워했다. 사실 해외로 진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한복을 꼭 입어야 하는 분들에게 한복을 제공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 속에는 생각지 못한 그녀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저는 명주 한복을 꼭 입어야 하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비단 수의를 해드려야 한다는 소임이 저에게 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 독립유공자분들이 그분들이에요. 일본에 의해 고통받고 일제에 대항해 싸우셨던 분들인데, 친일장례인 삼베수의를 입혀 보내드리면 절대 안 되지요. 우선
위안부 할머니들께 좋은 명주로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한복을 한 벌씩 꼭 선물 드리고 싶어요.
사실 혼자서 할 계획도 있었는데 혼자서만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뜻을 모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계획 중에 있어요. 독립유공자분들 같은 경우 90이 넘으신 분들이 대부분인데 독립유공자협회에 현재 총 63분이 있으셔요. 먼저 그분들에게 직접 한복을 다 지어서 증정해드렸어요”
남자는 태극기, 여자는 무궁화. 그녀가 만들어준 한복에는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두 상징이 그려지고, 수 놓여 있었다. 박은주 대표는 한국을 지금까지 있게 해준 이들을 존경했다. 옷을 받아본 분들 역시 박 대표를, 받아든 그 옷을 자랑스러워했다. 가족들 역시 그러한 선물을 받아 행복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박 대표는 뿌듯함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녀의 꿈은 국내에서 한복에 대한 의식을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파리, 밀라노 등에서 한복의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한복 산업에 대한 모든 부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는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혹은 그냥 평소 걸어가는 길거리 한복판에서도 한복을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