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는 1월 18일 광주를 찾아 5.18 기념공원을 방문했다. 리퍼트 대사는 “지난해 방문 시 날씨가 좋지 않아 5·18 기념공원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광주에서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5·18 기념재단의 활동을 굉장히 훌륭한 사례로 생각 한다” 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으로 귀국 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5·18 기록물을 공개하도록 하려는 광주시의 노력을 돕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평소 한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과 딸 에게 “세준” “세희”라는 이름을 지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사람으로 평가받는 마크 리퍼트. 재임 도중 괴한에게 테러도 받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던 그는 1월 20일 대사 임기를 종료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마크 리퍼트 대사의 지난 재임기간을 되돌아 보고자 한다.
1973년에 태어난 마크 리퍼트 대사는 스탠포드 대학교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국제 정치학 석사를 수료 한뒤 중국 베이징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중국 역사와 중국어를 배웠다. 99년부터는 미국 민주당에 입당, 당 안보,국방 정책 보좌관을 거쳐 패트릭 리히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계에 입문한다. 2005년엔 오바마 상원의원의 외교 안보 보좌관이 되었고 2008년 오바마 의원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선거 캠프 외교 안보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예비역 자격으로 이라크에 가서 네이비 씰 정보장교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그가 보좌하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오바마는 마크 리퍼트를 2014년 주한미국 대사관의 대사로 임명했다. 말 그대로 오바마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그는 2014년 11월부터 대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한다.
평소에도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많았던 그는 쉬는 날 에도 애완견”그릭스비”와 아내와 같이 서울 시내를 경호원 없이 거닐며 스스럼 없이 한국 국민들과 어울렸고 여러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대학시절 야구부로 활동한 이력 때문인지 야구를 좋아해서 매번 잠실 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적이 많았다. 두산 베어즈의 팬으로 두산의 유니폼을 입고 치맥을 뜯으며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던 그는 2015년 3월5일 세종 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의 조찬 연설을 위해 참석했으나 우리마당 통일문화 연구소의 대표 김기종이란 자에게 과도로 오른쪽 얼굴과 왼손을 크게 다치는 테러를 당한다. 평소 김기종은 크고 작은 행사에서 줄곧 소동을 벌여왔던 인물로 드러났으며 더욱이 이날 행사엔 초청도 받지 않았지만 행사 관계자가 얼굴을 안다는 이유로 맘대로 참석을 시킨 일이 드러나 더욱 큰 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화제가 되었고 특히 미국 언론은 이 사건을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으나 마크 리퍼트 대사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오히려 한국 국민들을 안심시키며 괜찮다며 “같이 갑시다” 라며 한미우호에 대한 확답을 주며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후 리퍼트 대사는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탐방을 하고, 지역 전통 예술가들을 찿아 뵙거나, 사회 저명 인사들과의 격의 없는 만남을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였고, 명절엔 한복도 갖춰 입는 노력을 보였다. 가끔은 국민들과 시장에서 소주도 한잔 하면서 정을 나누려는 소탈한 자세를 보여 많은 호평을 받았다.
1월13일 리퍼트 대사는 정동 대사관저에서 고별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어 그동안 한국 국민들에게 받은 성원과 사랑에 감사하다고 회견을 마쳤다. 이처럼 재임 내내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가 한국 국민에게 보여준 정성과 국민들과 소통하려는 격의 없는 자세는 역대 최고의 주한 미국 대사라는 평가를 남겼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주한 미국 대사관도 새로운 인물을 맞이하게 되었다. 후임으로 누가 올런지는 모르지만 마크 리퍼트 대사 같은 자세로 대사직에 임한다면 한미 우호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