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코리아 손은경 기자] #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서 조소과를 전공한 A씨(여·26)는 큐레이터라는 꿈을 포기했다. A씨는 “갤러리 쪽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워낙 박봉이라 비슷한 현대미술 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유명한 곳일수록 연봉이 말도 안 되게 적다. 적은 연봉 때문에 최근 1차 면접에서 붙었으나 2차 면접은 가지 않기로 했다”며 “개중 집이 좀 부유한 친구들의 경우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가지려고 월 90만원의 월급도 마다하지 않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사정상 100만원 이하 혹은 초반대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 미술시장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술유통업계가 전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술시장업체 수와 종사자 수는 2015년 기준에 비해 각각 4.4%, 12.4%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미술시장업체와 종사자 수의 증가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서면계약 체결률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속작가제도를 운영하는 화랑 121개 중에 서면계약을 진행하는 화랑은 59개(48.9%), 구두계약 36개(29.9%), 계약형태가 없는 화랑은 26개(21.2%)로 조사되어, 서면계약 체결률이 다소 낮음이 확인되었다.
계약서 미작성과 같은 경험은 비단 작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015년 문체부에서 발표한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시 조사 참여자 10명 중 3명만이 예술활동 계약 체결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나 미술 분야는 체결 경험 응답률이 15%로 전체 분야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인 바 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퇴직금 미지급,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임금 지불 등 열악한 환경에 미술계 종사자들이 임금 처우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나 고학력, 고스펙을 요구하며 동시에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미술계의 관행에 종사자들이 뿔났다. 지난달 3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큐레이터 및 미술계 종사자 임금 처우 개선”이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기재됐다. 청원자는 “큐레이터 및 미술계 종사자 임금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며 “큐레이터 자격증이 있든 없든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사립 미술관에서는 현재 100-150만원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시급에도 미치지 않는 임금을 주며 봉사하는 정신으로 일하라는 악행을 막아달라”며 뒤이어 본인의 면접을 봤던 한 사례를 공개했다. 청원자는 “꽤 큰 미술관 면접을 보고 인격 모독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해당 미술관에서) 일주일에 5회, 야근수당 없음, 한달에 두번 주말 출근 임에도 110만원을 불렀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나라가 나서 미술관의 처우개선을 해주세요.”라고 청했다.
해당 청원글에 동의한 한 누리꾼 역시 “높은 학력과 전문성을 요구하면서, 급여는 기초생활조차 불가능한 100만원 초반을 준다”며 “배우는 시기라고 맘대로 생각하여 막 부리는 태도가 만연하다”고 미술계 종사자 처우에 대한 점을 꼬집었다.
또다른 이 역시 “석사이상에 여러 자격증들과 외국어능통, 4주 주말근무 필, 야근수당 무, 극소수의 티오에 갑질은 기본. 돈 생각하면 이 분야에 발을 들이면 안된다는 기본마인드와 열악한 처우에 순응하고 일하고 있는 현실.. 노력한 댓가는 씁쓸한 보수.. 열정조차 식고 회의감 들게하는 박물관 미술관의 상황을 낯낯이 파해쳐 정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도록 희망한다”고 전했다.
문체부는 지난달 29일 ‘사람이 있는 문화,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를 표방하며 나섰다. 이어 관광산업, 콘텐츠 등 문화예술과 관련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일자리 늘리기에 앞서 미술계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예술계에 뿌리내린 악행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예술 계통에서 종사하는 당사자들의 경우 저임금이 당연시되는 예술계의 풍토를 개선하고 노동의 양과 질이 비례하는 업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바란다.
한마디로 이들은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처우’를 촉구하고 있다. 일자리 늘리기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계의 고급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당한 근로 환경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한 때이다.[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