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뉴스코리아 손은경 기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자의가 반영됐든 타의가 반영됐든 우리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무언가를 택하게 된다.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고심한다. ‘내 선택이 옳은 걸까?’
셰익스피어 작품 속 햄릿은 이런 명대사를 외치기도 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말은 선택의 기로 앞에 선 인간의 고뇌와 회의를 제대로 관통한다. 이처럼 우리는 살면서 갈림길 앞에 놓인 중대한 순간을 맞닥드린다.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이 있다. 아파서 한동안 휴직했던 직장 동료가 휴직 기간을 끝내고 복직을 앞두고 있다. 그가 복직을 며칠 앞둔 시점에 회사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회사는 지금 경영난에 처했습니다. 부득이하게 인건비를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 제안하려고 합니다. 해서 당신들 동료의 복직을 두고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과반수 이상이 동료의 복직을 택할 경우 그는 다시 여러분들과 일하게 됩니다. 다른 선택은 무엇이냐고요? 그가 복직하지 않음으로써 회사가 아낄 수 있는 인건비의 일부를 여러분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두당 100만원씩 지불하겠습니다. 약속합니다. 과반수 이상이 동료의 복직 대신 보너스를 택할 경우 다음달 월급에 바로 약속한 금액을 포함해 지급하겠습니다”
눈치싸움의 시작, 동료의 ‘복직’이냐 ‘보너스’냐 갈림길에 선 사람들
앞서 전한 사례는 장 피에르 다르덴 감독의 2015년도 작품 <내일을 위한 시간>의 일부 내용이다.
영화의 보다 디테일한 줄거리는 이렇다. 복직을 앞둔 ‘산드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회사 동료들이 그녀와 일하는 대신 1000유로(현 시세 130만원)의 보너스를 받기로 했다는 것.
하지만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 덕분에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된다. 반장이라 불리는 회사 내 상사 한 명이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택하지 않으면 추후 인사반영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높인 것.
일자리를 되찾고 싶은 산드라는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를 찾아가 설득하려 하지만 보너스를 포기하고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말은 어렵기만 하다.
그녀의 복직보다는 보너스가 필요하다는 동료의 말에 산드라는 애써 괜찮은 척 하지만 뒤돌아 좌절한다. 비참한 자신의 꼴에 그녀는 재투표를 거부하고 복직을 포기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은 집안 사정에 다시금 동료를 설득하려 길을 나선다.
영화는 이런 식이다. 16명의 선택 앞에 산드라는 그야말로 파리목숨이다. 동료들은 어떻겠는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보너스를 선택했던 이들도 산드라의 얼굴을 보고 다시 선택을 바꾼다. “처음엔 보너스를 택했는데 산드라 네 얼굴을 보고 마음을 바꿨어. 너를 택할게”… 그들은 ‘동료애’를 생각한다.
반면 보너스를 택한 이들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한다. 그들의 이유는 이렇다. “인테리어 비용이 모자라 보너스가 꼭 필요해.”,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해”, “다음달 재계약을 앞두고 있어서 반장의 말을 듣지 않으면 회사에서 잘릴지도 몰라” 등등.
되찾을 수 있을까? ‘내일’을 위한 그녀의 시간이 흐른다
그렇다면 영화는 다시 이렇게 흘러간다. ‘동료애’냐 ‘생계’냐. 쉽게 결단을 내리는 이들도 있지만 영화 속에는 어느 한쪽을 포기함으로써 후회하고 다시금 고뇌하는 이들이 더 많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선택의 기로에 높인 사람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산드라의 복직의 여부를 두고 보는 이는 애가 타기만 한다. 그리고 선택을 앞둔 이들이 얼마나 냉정해질 수 있는가, 약해질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다. 과연 산드라는 ‘내일’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선택장애를 앓는 이들이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이 영화를 추천한다. 갈림길에 놓인 많은 이들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동료의 ‘복직’이냐, 특별 ‘보너스’냐… 여러분이라면?[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