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군 비밀 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하게 된 , 군 비리를 고발한 용기 있는 군인들에 대해 다뤘다면 이번 기사에선 대한민국 사회를 발칵 뒤집은 사람들에 대해 소개해 볼까한다.
류영준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을 세상에 처음에 알린 류영준 (현 강원대 의대 병리학) 교수는 서울대 출신으로 황우석 교수의 제자이며 2002년 황우석 줄기세포 연구팀에 합류해 팀장을 맡았고, 2004년 황 전 교수가 ‘사이언스’에 인간 배아 줄기세포 논문을 발표할 때 제2저자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그는 황우석 교수의 든든한 우군이었다. 그는 지난 의료 윤리 연구회 47차 모임에서 ‘생존과 윤리 사이’를 주제로 강의하면서 MBC PD수첩에 제보하게 된 경위를 소개하였다.
황우석 교수팀을 떠나고 2005년 원자력 병원 1년차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시절, 황우석 연구팀이 11개의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었고, 또 하나는 5월 ‘네이처’지에 논문이 실리는 직후 임상실험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류 교수는 복제 줄기세포를 1개도 아니고 11개 만들었다고 하니까 “이건 도를 넘는 짓을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폭로를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로 그때는 연구실을 나온 상태였고,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어서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우석 교수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10살 소년을 상대로 임상시험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대로 놔두면 소년이 억울한 죽음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 두달 동안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당시 그는 8개월된 아들을 키우고 있던 부모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평소 믿고 따르던 모 대학원 원장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했다. 하지만 대학원 원장은 화분을 가리키며 한국 사회에서 꽃을 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체념을 하며 류 교수를 말렸다. 하지만 그는 “황우석 교수는 정권과 국민, 기득권의 지지를 받던 상황이었지만 제가 본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당시 나는 어렸고, 아무 것도 없었기에 폭로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가치를 지키려면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무언가가 문제인데 나는 제보를 한 이후 10년 간 황우석 지지자들에게 탄압을 받아 고생을 했고, 어떤 분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어떤 편에 서느냐에 따라 수입 등이 너무나 큰 차이가 나고, 선택의 순간 그런 게 크게 작용했다”고 털어놓으며 그 간의 마음고생을 회상하였다.
그의 용기있는 폭로에 힘입어 국내 의학계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결과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줄기세포 논문을 검증하였다. 뒤이어 미국, 일본 과학자들이 논문에 실린 조작된 줄기세포 사진을 추가로 찾아내면서 결국 이 사건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으로 결론이 나며 사회적,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류영준 교수의 이야기는 이후 영화 <제보자>로 제작이 되어 개봉이 되었다. 류영준 교수 역할엔 연기자 유연석이 맡아 열연했다.
김용철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난 김용철은 83년에 사법시험을 합격 86년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해군 법무관을 거쳐 인천 지검 검사로 임용이 되었다. 이후 승승장구 하며 검찰 부장을 지내다가 97년에 삼성 그룹의 법무팀 으로 자리를 옮긴다.
검사시절에도 음주운전 뺑소니를 치고 도망간 친 동생, 만취 되어 폭행범 으로 입건된 처남을 구속 지시할 정도로 원칙에 있어서 강직한 성격인 그는 삼성 재직시절 그룹사의 온갖 악행에 동조 하도록 강요받는다. 그가 법무팀 에서 일하며 한 일들은 삼성 그룹의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방해하거나 삼성의 불법적인 일들에 대해 관련자들에게 미리 입막음을 하게 하고, 정부 부처 공무원들과의 로비를 맡아 만남을 주선하게 하는등 그룹차원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법, 편법에 관한 일들에 대해 손을 써서 사법당국의 눈을 피하게 만드는 게 임무였다며 괴로웠던 지난날을 회고했다.
거기에 이건희 회장을 신격화 하는 광신도적인 그룹의 분위기와 똑똑하고 강직한 성품의 사람들이 바른말을 하면 한직으로 좌천되거나 퇴사를 당하게 만드는 그룹 내의 행태에 질렸고 본인도 역시 에버랜드 문제,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삼성그룹에 쓴 소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2004년에 사표를 낸다.
퇴임 후 변호사를 하며 삼성 그룹의 비리에 대해 언론에 하나씩 폭로를 하던 그는 삼성의 압력에 다니던 법무법인에서 쫒겨나 변호사도 못하게 되었고, 결국 2007년 10월에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을 통해 삼성 그룹의 차명계좌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게 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그룹사의 대부분 간부가 차명계좌를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삼성그룹은 거액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는 것, 삼성그룹이 경영권을 불법으로 승계했으며, 이에 관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증인 조작 등 사법 방해를 저지른것, 에버랜드 사건뿐 아니라 국세청의 세무조사, 공정위의 부당거래조사도 치밀한 각본에 따라 진상이 은폐 된 것, 삼성그룹은 이건희의 직접 지시에 의해 검사들을 관리해왔으며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떡값으로 불리는 불법 로비 자금을 제공해 왔다는 것을 낱낱이 밝혔다.
이후 이건희 회장은 2008년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었고 이후 김용철은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을 내놓았다. 삼성의 압력 때문에 언론사들이 출판 광고를 못하게 되었음에도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으며 외신에 ‘삼성 공화국이 되어버린 한국, 이라는 기사로 보도되며 국민들에게 씁쓸함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는 폭로후 이리 저리 떠돌며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현재는 광주광역시 교육청 감사관으로 재직중 이다.
김영수
1987년에 해군 사관학교 45기로 입학해 1991년에 임관했다. 이후 보급병과로 전과해 소령까지 진급했다. 2007년부터 3년 동안 선후배 다면평가에서 1위를 했던 우수한 엘리트였던 김영수 소령은 2009년, 해군 내에서 발생한 계룡대 근무지원단의 9억원대 납품 비리를 알게되고 이를 군 기관에 수차례 고발했다.
하지만 고발 이후 오히려 그는 윗선에 찍혀 근무평점 최하 등급을 받게 되고 보급병과와 상관 없는, 고위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병과 책상을 같이 써야 하는 국군 체육부대 한직으로 좌천된다.(참고로 국군체육부대는 전투부대가 아닌 전역을 앞둔 장교들을 배치하는 부대로 알려져 있다. 즉 김영수 소령을 강제 전역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당시 체육부대에 복무 했던 병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체육부대 장교들 내에서도 “괜히 나서서 일을 키웠다.” 라는 식의 뒷담화가 돌았고, 김영수 소령을 일부러 따돌리는 군내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허나 김 소령은 그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김 소령은 해군 헌병대을 통한 고발이 묵살되자 이 사건을 육군 헌병, 국방부 감찰단등에 수차례 보고 했지만 번번히 의견은 묵살되었다. 관련자 처벌이 이루어 지지 않고 사건이 덮힐 위기에 처하자 그는 용기를 내어 MBC PD 수첩에 폭로를 하게 된다.
사건내내 침묵으로 일관하던 군 당국은 방송이 나간 직후 1달만에 조사를 급속도로 진척시켰고 관련차 문책과 처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국회 차원의 해군 국정감사까지 이루어 지게 되었다.
하지만 김영수 소령은 더 이상 진급을 하지 못했고 내부고발의 공로로 훈장까지 수여받았지만 군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4개월뒤 스스로 전역 신청을 하게 된다. (해군은 전역 당일까지 김소령에게 경고장을 날리는 치졸한 행태를 보였다.) 당시 사건의 주요한 피의자로 지목받던 정옥근 해군 참모총장은 수억 원대의 횡령과 비리 혐의로 1차례의 집행유예에 이어 2015년 초에 또다시 구속되었으며 8월 12일에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전역후 김영수 소령은 국민 권익 위원회 조사관을 거쳐 현재는 국방 권익 연구소장을 맡아 현재도 군 비리에 관한 감시를 철저히 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우리 나라의 사회의 어두운 면모와 더러운 실상을 알게 된 건 내부자들의 고발과 양심선언이 없이는 참으로 힘든 일들 이었다. 자신에게 불 이익이 올것을 알면서도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용기를 내어 폭로를 한 수많은 내부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야말로 조국인 대한민국을 올바른 국가로 이끌어 가고자 노력한 진실한 애국자들 이라고 생각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될 것이다.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니체 <선악의 저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