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분. 우리나라에서 자살자가 한 명씩 더해지는 시간이다. OECD 국가 중 11년 연속 자살률 1위에 오르며 이른바 자살공화국이라고 불리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지난 1999년 경찰공무원에 합격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한 사내에게 자살은 언감생심이었다.
피땀 흘려 일궈낸 합격이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해낼 것 같았던 20대 청년은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을 맞닥뜨렸다.
합격 뒷풀이 모임 후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그는 순식간에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 됐다.
전신마비자 판정…자살밖에 떠오르지 않아
하루아침에 좌초된 사내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경찰의 꿈은 먼지처럼 사라졌고 주변의 시선은 이전과 달리 싸늘해졌다.
사내가 무엇보다 견딜 수 없던 점은 아내에게 드는 미안함이었다. 자신만 믿고 평생을 맡긴 반려자에게 장애인의 아내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운 격이었다. 그는 자살을 결심했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고 내가 죽어야만 주변 사람들이 편해질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목 아래로는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역설적으로 죽기 위해 재활에 열을 올렸다. 아내의 남은 인생에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죽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한 달 동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1개월이 흐르자 몸은 뒤집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걷기 위해 옷에 소변과 대변을 보면서도 움직였다. 그야말로 눈물겹게 재활에 임했다. 의사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1년이 지나자 그는 전신마비자였다는 사실이 민망할 정도로 회복했다. 신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을 만큼 호전됐고 사내는 짧은 시기에 다시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자살을 위해 타다 남은 불씨를 태워냈던 그에게 비장애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걷기의 성공은 새로운 삶의 불쏘시개가 된 것이다. 자살은 살자로 변했다.
긍정적인 기운이 그를 감싸기 시작했고 아내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게 아니라 사력을 다해 그녀를 다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사내는 모험을 감행했다.
금형설계를 전공했던 경험을 살려 기계설비 회사를 세운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세운 이 회사가 산업용 산업기기를 제작하는 그린테크다.
자동차의 라인을 꾸미고 장비 제작 지그를 공급하는 그린테크는 지난해 연매출 10억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불과 10년 만에 이러한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사내가 바로 그린테크 이선우 대표다.
교통사고는 서막에 불과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사고 전후로 세상의 시선이 무섭도록 변해 상처가 깊었다. 그러나 자존심을 내려놨다. 상처가 아물고 나서는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었다. 장애인이 사업을 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쌓여가는 적자에 돌파구를 찾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보통사람이 1시간 일하면 나는 5시간을 일하더라도 반드시 일을 마무리했다.
이러한 노력이 인정을 받았는지 사업은 점점 양지로 나올 수 있었다. 안정 궤도에 올랐고 거래처에서는 성실한 사장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할 수 있다라는 달콤한 성취감이었다.”
힘들게 사는 이들이 나를 디딤돌 삼았으면
만약 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이와 같은 기쁨은 함께 땅 속에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희망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절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재활은 끝이 없는 과정”이라는 이 대표는 “과정은 말 그대로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장애는 걸림돌일 뿐이지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라고 피력한다.
“힘들게 살고 있는 이들이 장애를 디딤돌 삼은 나의 사례를 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이 대표는 계면쩍은 듯 웃었다. 기자가 본 웃음 중에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