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가 어떤 영화냐는 질문을 받으면 상투적이지만 아름다운 영화라고 답하겠다.
남녀의 사랑이 뜨겁게 타오르지만 결국 마침표는 찍지 않는다. 여자는 당연히 남자와 미래를 약속할 줄 알았다. 그러나 꿈을 이루고 나서 남자를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자가 예상대로 남자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장면이 교차되어 나오는데 이건 꿈이다. 꿈이 현실이 되자 행복이 생겼지만 아름다움은 없어 보인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기대한 그림에서 격발되지 않는다. 결핍이 아름다운 감정을 만든다. 타자가 아름다운 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쟁취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이루지 못한 배우라는 꿈이라는 결핍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남자는 꿈을 좇는 사람이었고 그에게 투영되는 나까지 아름다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인정받는 배우가 되자 결핍이 사라지고 아름다움도 흩어진다.
영화에서 남자는 돈에 쪼들리자 꿈을 타협하고 돈을 좀 버는 밴드에 들어간다. 여자를 위해 꿈까지 양보한 남자에게 여자는 손가락질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말한다. 이전과는 달라졌다고 말이다. 아름다움은 우월한 대상에게서 나온다. 기본적으로 동등한 관계를 상정하는 결혼에서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행복이 느껴지는 이유다.
동등하면 싸우게 되어 있는 인간은 서로를 헐뜯으며 현실을 자각한다. 하지만 으레 다시 화해하면서 행복해한다. 여기서도 역시 대동소이하다. 결핍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있다.
범접할 수 없는 꿈을 좇는 삶은 아름답다. 라라랜드에서 나오는 환상적인 장면들은 뮤지컬을 질색하는 내게도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사무치는 영화의 면면들은 그렇게 살고 싶었던 내 갈망과 만나 쾌감을 솟아오르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공을 들인 구석이 눈에 띄었다. 처음 막이 올랐을 때 뜬금없는 노래와 춤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뮤지컬에 재미를 못 느끼는 한 사람으로서 내용 없는 노래가 나오니 앞으로 견뎌야할 두 시간이 끔찍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촘촘하게 엮인 이야기에 노래와 춤의 옷을 입은 환상적인 영화였다. 이유 없이 노래하는 게 아니라 그 노래가 이후 장면과 연결된 내용이라고 하니 기하급수적으로 감동이 늘어날 수밖에.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각 장면들이 하나하나 엮여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만들려면 보통 노력으로는 어림없겠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스토리나 특수효과가 아니라 영화음악이었다. 영화에서 우리의 귀를 간지럽히는 음악의 장르는 재즈다. 육지에서 날뛰는 물고기 같은 선율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하나?
언어로 대비시키는 작업으로는 합집합을 도출할 수 없을 것 같다. 재즈를 형용하라면 교집합이 얼마간은 있겠지만 분명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뭔가를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그만큼 이 영화의 재즈가 좋다.
라라랜드 공식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