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조리업계에서는 분자 요리학(molecular gastronomy)이라는 새로운 요리 방법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분자 요리학이란 음식의 질감과 조직, 요리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맛과 질감을 개발하는 요리 방법이다. 프랑스 화학자인 에르베 티스와 헝가리 물리학자 니콜라스 쿠르티가 요리의 물리와 화학적 측면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탄생한 이 새로운 영역은 과학과는 무관해 보였던 요리를 서로 결합함으로써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최근 고리타분해 보이는 건축 디자인에도 파라메트릭(parametric)이라는 새로운 디자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쉽게 건축 디자인과 수학, 컴퓨터 기술의 교묘한 조합으로 설명되는 파라메트릭은 기존의 디자인 기술들이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표현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중심에 한국인 건축 디자이너 이상윤(Sangyun Lee) 씨가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는 파라메트릭이 건축 디자인계의 블루오션이라고 자신한다. 지난해 파라메트릭 기법을 활용하여 미국 명문대인 코넬대학교의 건물을 디자인 하기도 했던 건축계의 차세대 리더 이상윤, 그를 만났다.
■ 파라메트릭 건축은 대체 무엇인가…
– 파라메트릭 건축은 사실 새로운 분야는 아니다.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영역이었는데 최근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관심을 끌고 있다. 수학적인 알고리즘, 선, 점, 도형간의 구속 조건에 의한 관계적 프로세스를 디자인 과정에 적용하여 기존에 표현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나 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2차원, 3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상상력은 무한한데 2차원과 3차원도 부족해졌을 때 파라메트릭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 파라메트릭 건축을 접하게 된 동기는…
– 학교 수업 중에 내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 아이디어를 형상화 하려고 했는데 형태가 복잡하여 3D모형으로는 만들기가 힘들었다. 파라메트릭에 대해 알게 되어 시도해 보았는데 3D로 불가능해 보였던 형상화가 가능해서 충격을 받았다. 그 후에 파라메트릭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 최근 파라메트릭 건축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에게 파라메트릭은 디자인 과정을 도와주는 여러 가지의 매개체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건물을 디자인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연필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유난히 성능이 좋은 연필 같은 것이다. 결국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은 디자이너 자신의 상상력이므로 좋은 아이디어를 갖는 게 일단 우선이다.
그러나 파라메트릭이 건축 디자인 분야에 블루오션임은 분명하다. 특히 한국인 건축 디자이너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국인 건축 디자이너들은 보통 컴퓨터 기술이 뛰어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해 개방적이어서 쉽게 배우는 편이다. 따라서 컴퓨터를 잘 사용하고 계산과 같은 수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서 건축 쪽에 관심이 있다면 파라메트릭은 분명 기회의 시장이다. 나 또한 그런 면에서 더 쉽게 인정을 받았던 것 같다.
■ 건축 디자인이 결국 아이디어 싸움이라면,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특별한 방법은…
–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다만 어디를 가든 노트북과 스케치북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스케치를 하고 컴퓨터로 만들고 분석한다. 아이디어는 거리를 걷다가 자연과 사람들을 바라보다 예고 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해온 디자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 모포시스 건축 사무소에서 일할 때 루즈벨트 아일랜드에 지어질 예정인 코넬대학교 건물 파사드 부분을 디자인 했었다. 건물자체가 갖게될 상징성 주변 컨텍스트와의 관계 더 나아가 도시와의 관계성을 생각해서 디자인을 해야하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파라메트릭을 사용해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가능한 변수를 만들어냈고,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디자인을 통제하며 발전시켜 나갔다. 또한 이 건물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므로 기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미적인 부분에 많은 연구와 실험을 하였다. 빠른 시일 내에 건물이 지어져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 뉴욕커로서 뉴욕 최고의 건축물을 꼽는다면…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축물은 쿠퍼유니온 건물이다. 개인적인 생각이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기존의 전형적인 건물인 박스형태의 건물이 아니라 독특한 외관과 약간 일그러진 건물의 형태가 어느 순간 건물로서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험적, 독창적, 감각적 디자인과 기능성을 겸비한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생각한다.
■ 파라메트릭 건축 강좌를 만들고 있다는데…
– 맞다. 원래 여가시간을 이용해 조용한 음악을 듣거나 다큐멘터리를 즐겨보곤 하는데, 요즘은 온라인으로 디지털 파라메트릭건축 강좌를 만들며 여가시간을 보낸다. 지난 2월 뉴욕 주립대에서 파라메트릭 관련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때 가르치던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한두 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데도 마땅한 정보나 수업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에 공개하기 위해 만들고 있다.
■ 마지막으로, 건축 철학이 있다면…
– 건축을 통한 건물도 사람과 같은 유기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양소가 필요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가 필요하다. 입에 단 것만 찾아서 먹는다면 건강을 해치듯이 건물도 디자인만을 생각한다면 겉만 화려하고 안전적으로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이 주변과 어울려 살 듯 건물도 주변과 어울려야 아름답다. 주변과 어울리고 설계상 무리가 없으면서 아름다운 건축디자인, 가장 근본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일을 할 때 늘 기본을 기억하며 디자인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