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종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쳐다보던 학창시절을 기억하면 좋은 추억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매점을 향해 뛰어가는 등의 달콤한 쉬는 시간이 있기에 40분가량의 수업시간 동안 꼼지락거리면서도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라는 꿀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이렇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쉼을 할 수 있는 시간의 틀 안에서 생활하며 자라나고 교육받았다. 물론 대학입시의 때가 가까워져 올 수록 쉬는 시간의 개념이 사라지지만 그래도 휴식을 통하여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했다. 하지만 최근 직장인과 성인들의 삶에서 쉼이란 단어는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취업난으로 대표되는 청춘의 삶에서 오랜 고생 끝의 쉼은 얼마나 꿈꿔온 순간일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휴식을 포기하며 고달픈 삶을 사는 현대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를 가리켜 쉼을 포기한 쉼포족이라고 부른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의 폭풍에서 살아남기위해 휴가철에도 마음놓고 휴가를 즐기지 못하며 회사로 출근하는 출근 휴가를 가는 직장인들도 생겨나고있다.
오죽하면 젊은 연령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지칠 때 어떤 약을 먹어야 하나요의 질문에 대한 처방전은 사표라는 풍자의 이미지도 SNS를 통해 공유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쉼포족이 젊은 연령대에만 해당하진 않는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구조조정에 눈치가 보이는 연령대는 오히려 고 연령대이다. 따라서 50대 이상의 연령대에서도 마음 편히 쉬기보다는 항상 걱정에 짓눌려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의 그림이 아닌 은퇴 자체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에 항상 쫓기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경제발전과 함께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벌자의 풍조가 있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리고 자연스럽게 회사에서도 나가야되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 경쟁의 과열이 식지 않는 것이다.
힐링이라는 단어와 함께 휴식의 의미가 이전과는 달라진 현대 사회에서 이제 쉼포족이 등장함으로 휴식의 의미는 또 변화하고 있다.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은 휴식이 아니라 정말 마음 편히 쉬어야 휴식이라는 의미의 확산으로 젊은 계층은 명절에도 잔소리를 피해 어학원이나 아르바이트, 여행 등으로 도피하고 있다.
이렇게 취업난과 맞벌이 그리고 고령화 등의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쉼을 포기한 쉼포족이 늘면서 휴식에 관한 마케팅도 활발해지고 있다. 20대 청춘을 응원하는 힐링 토크쇼부터 워킹맘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사하는 이벤트, 시니어 세대만을 위한 행사 등 쉼이 없는 현대인에게 쉼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진행되고 있다.
TV 프로그램에서도 힐링 토크쇼와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많은 SNS에서도 글과 그림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공감받고 있다.
연애와 결혼, 출산에 이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다는 5포 세대인 2-30대 학생과 직장인으로 대표되는 청년층은 대표적인 쉼포족이다.
한 문장의 길이가 끝없이 길어질 때 쉼표가 없다면 호흡이 부족해 읽기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마침표를 너무 빨리 찍을 수도 없다.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삶에 쉼표를 찍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사회는 무한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쉼표 하나 찍을 여유를 주기보다 마침표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쉼포족으로 대변되는 현대인들은 쉼을 포기한 게 아니라 포기할 수밖에 없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점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