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출산 – 이뉴스코리아

[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농부만 추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도 자신이 뿌린 씨앗을 거둬들이는 때가 있다. 바로 출산의 순간이다. 약 한 달 전 첫 딸의 출생으로 아빠의 삶을 살아가는 한 남성의 출산 기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빠의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유전인자 하나가 팰프스처럼 헤엄쳐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하는 순간 그는 ‘경이로움’을 느겼다고 한다. 그의 인생에 경이로웠던 순간은 길바닥에 떨어진 만원을 득템하는 순간뿐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을 기다린 듯 아스팔트를 부여잡고 있는 길바닥의 만원을 줍던 순간 느꼈던 환희보다는 훨씬 강한 심리적 파동을 느꼈다.

1. 아빠가 된 한 남자
맨몸으로 세상에 태어날 아기를 위해 아기 침대와 젖병 소독기 공기 청정기등을 들여놨다. 신혼부부를 위해 최적화된 집은 늘어나는 아기 물품으로 더 많은 수납 공간이 필요했다. 인간이란 자고로 자신의 고유 영역을 확보하면서 존재감를 증명하는 법이다.

2. 보리굴비에서 나온 ‘보리‘
24시간 동안 담당 의사의 관찰적 시점에 의해 정상 호흡을 회복한 아이가 눈을 뜨고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빠는 비닐과 장갑을 뒤집어 쓰고 면회 시간에 맞춰 아기를 만나러 갔다. 아기의 태명은 보리였다. 입덧이 심한 산모가 보리 굴비를 먹방의 BJ처럼 먹어댈 때 그들은 태명을 보리라고 잠정 합의했다.

3. 울지 않은 아이, 아빠는 순간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혹시 출산의 황홀을 만든 군중 심리로 인한 억지 기쁨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출산 당일 거꾸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먼저 깨우친 아이는 자연 분만을 위한 공간의 대척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의사와 산모의 합의하에 제왕절개 날짜가 잡히고 출산은 하반신 마취와 산모의 배를 관통해 들어온 의사의 손에 의해 이끌린 아기의 울음소리로 시작했어야 했다. 하지만 태중의 고요함에 길들여진 아이가 갑작스런 빛의 세계에 이끌려 자가 호흡 단계에 진입까지 안착하지 못했고 결국 응급 치료를 받아야 했다. 탯줄을 자른 기쁨도 잠시였다.

갓 태어난 아이는 호흡 곤란을 느껴 응급실로 직행했고 갓 태어난 아이는 응급실의 철문 안으로 자취를 갑추고 산모는 수술실에서 머물렀다. 아이의 아빠는 수술실과 응급실의 정중앙에서 측은지심 동하는 마음의 축에 따라 발길을 오가곤 했다. 10명의 신생아 중이 한 두명정도는 출생 직후 자가 호흡 곤란 증세를 겪지만 대형 병원의 완비된 시스템 안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신생아 실의 문 밖에서 발길을 멈췄고 순간, 모친의 늙은 눈주름이 신가물처럼 그를 스쳤다. 부모가 되어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옛말이 하나 틀린 바 없었다.

4. 엄마의 퇴원 아이의 입원

수술로 출산한 산모는 퇴원을 했다. 아이를 여전히 응급실에 두고 오는 차 안에서의 눈물바람, 그들이 본격적인 부모가 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아빠는 우는 산모의 눈물에 부응할 수 없었다.아빠와 남편이 된다는 것은 삐져 나오는 눈물을 넣어두는 과정의 연속이다. 출산한 부인의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는 일과에도 지치지 않는다. 남자의 출산은 정신력이 받쳐줘야 하는 법이다. 또한 양가에서 밀려오는 전화에 응대하고 아이가 눈이라도 뜨는 순간 동영상에 담아 단체 카톡에 정기적인 업로드도 해야한다. 신병 교육을 받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량이 필요했다.

4. 아이와의 아이컨택

2주가 지난 후 아이가 처음으로 그들의 신혼집에 입성했다. 둘둘말린 이불에서 아이가 아빠를 응시했다. 아빠의 오감과 육체의 레이더는 아이의 주파수에 따라 움직인다. 태중에는 모체에서 분비되는 수면 호르몬으로 인해 일상의 대부분을 잠으로 채웠지만 출생 2주후부터는 수면 호르몬이 더이상 전달되지 않아 아이는 두 시간마다 잠을 깨고 모든 소통은 울음으로 대신한다. 아이 엄마는 노화가 촉진되기 시작했다.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산모를 대신해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해야 하는 인생의 연장근무가 무한 반복되기 시작했다.

출산 후 한 달

퇴근 후에는 살림을 하고 아기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은 자신의 아내에게 집중하는 법. 사람들은 가끔씩 애 하나에 돈이 수 억이 든다며 양육에 부담을 느끼지 않냐고 질문하곤 한다. 먼 미래의 수 억 지출을 걱정할 시간에 현재의 아빠됨을 즐기면 되는 것. 인생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기에 타인의 우문을 현답으로 해피엔딩. 여전히 아빠의 출산 일기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