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학생 아파트 추락사, 우리 사회는 영화 원더를 꿈꾼다.

원더(=구글 이미지)

[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사람의 신체에 작은 실핏줄을 길이로 환산하면 지구를 세 바퀴를 돌 정도의 길이라고 한다. 압박붕대처럼 지구를 돌고 있는 오로라가 사람의 몸속에 ‘신체’라는 압축파일이 숨어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인간이 하나의 행성이 아닐까라는 논리적 비약에 잠시 빠져 본다.

이 하나의 행성들은 ‘소통’과 ‘이해’를 터득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유아기는 전 우주가 자신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경험하고 아동기는 타인의 배려를 권리로 착각하는 오만함에 빠져 산다. 청소년에 진입하면 자아중심적인 사고가 친구라는 외딴 행성과 마찰을 일으피해 주지 않을 정도의 ‘생활적 거리감’을 체득하게 되다.

영화 <원더>의 주인공 ‘어기’는 초등학교 5학년 쯤 되는 10대 초반의 소년이다. 어기는 시작부터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지 않은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안면인식 장애를 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우주복을 입고 우주인을 상상하며 자라난다. 장애아를 가진 가족들이 스트레스보다는 애뜻함으로 어기의 삶을 이끌어 주기위해 노력한다. 덕분에 어기는 지구와 우주의 경계인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라게 된다.

하지만…어기의 부모님은 그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홈스쿨링으로 학교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부모는 결국 어기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어기의 엄마는 어기가 학교 생활이 시련과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어기의 삶에서 ‘사회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 철없는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이 때로는 얼마나 잔악무도한 결과를 낳는지 예측될 수 있기 때문에 ‘학교’는 어기의 부모에게 있어 가장 가혹한 곳일 수밖에 없었지만 어기를 통해 가족이 직면한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친구와 학교는 인간의 사회성이 형성되는 토대라고 착각하지만 이 나이에 평균 혹은 일반에 도달하지 못한 행성들은 인류의 흔적조차 스칠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게 된다. 소외와 괴롭힘에 대해 죄의식 없이 가해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종종 도덕성이나 배려를 가정에서 서서히 습득하지 못하면 여전히 동물적 감수성이 타인에게 날카로운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마치 사파리의 사자떼 주변에 놓여진 한 마리 애완견과 같은 처지에 놓은 주인공 어기. 어기의 가족의 간절함과 불안함을 뒤로 하고 이 어린 소년은 학교라는 ‘악의 소굴’로 입성한다. 하지만 학교를 처음 접한 날의 낯선 공포를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어기 엄마의 교훈 때문이었다.

(사진 = 구글 이미지)

“있기 싫은 현실에서는 있고 싶은 곳을 상상하라“

공포와 불안과 갈등을 겪지 않고 감정을 객관화하는 지혜를 가르쳐 준 어기의 엄마 덕분에 어기는 이미 심리적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을 잃지 않고 학교 생활에 적응한다. 하지만 어기는 그만의 쾌활함을 드러낼 수 없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소외감은 때때로 어기의 자존감을 흔들었다. 타인이 규정한 자신을 인정하면서 한 사람 혹은 한 인격이 완성되어가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아의 모습을 발견한다. 안면 장애라는 어두운 시선들은 어기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너의 사소한 행동이 인생의 역사를 만든다”(사진 = 구글이미지)

먼저 다가온 친구 잭윌

과학 수업시간에 커닝의 추억을 공유한 잭윌은 어기와 친구가 된다. 잭윌이 어기에게 경계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기의 학교 생활도 점차 ‘평범한’에 젖어드는 듯했다.

할로윈 데이를 맞이한 어느날, 한껏 부푼 어기는 파티를 즐기기 위해 학교를 찾는다. 모두가 제 모습을 감추고 기괴한 모습으로 치장한 가운데 파티 분위기에 취해 있다.  잭윌은 친구들 사이에서 어기의 얼굴을 조롱하는 듯한 농담을 내뱉게 된다. 공고롭게 이를 엿듣던 어기는 평소 친구라고 여겼던 잭윌에게 상처를 받고 다시 혼자의 늪으로 자신을 가둔다.

사실 상처는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 임팩트 있게 때려 맞는다는 사실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어기는 이후 잭윌을 의도적으로 피하게 된다. 이 틈을 타 아이들은 잭윌이 어기에게 전염병이 옮았다며 어기를 고립시키려 한다. 이 둘 사이를 유심히 지켜본 예민한 사회적 감각의 소유자인 ‘썸머’가 대략의 사연을 알게 되고 잭윌에게 어기에 대한 정보를 살짝 흘린다.

할로윈데이 이후 자신을 회피하는 어기에 대해 내심 불편한 마음을 지닌 잭윌은 썸머의 언질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실수와 어기의 상처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한다.

인터넷 게임의 아이디로 어기를 만난 잭윌은 이미 주워담을 수 없는 자신의 ‘몹쓸 말’에 대해 사과하고 두 아이는 다시 친구가 된다.  이 영화는 흔한 배려와 우정을 ‘외모’라는 더욱 식상하고 자칙 교조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담담히 아이들의 시선과 어른들의 인내로 풀어낸다.

인간은 외모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몇 년마다 한 번씩 cf만 찍어서 강남의 빌딩을 산 연예인은 그야말로 태중의 성형을 통해 오직 외모로 인해 세상을 평정한 ‘얼굴의 신’이 있는 반면 사람의 형상을 인간의 외모는 조롱이나 차별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외모는 행운과 불행을 규정짓는 상당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

표피로 규정된 경계에서 때론 흔들리는 어기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논리와 편견으로 타인의 불행에 대해 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때로는 사회적 편견을 통념이라 치부하며 폭력에 가담하며 조력하기도 한다.

 

(사진 = 구글이미지)

얼마 전 인천에서는 한 중학생이 집단 구타를 견디지 못해 아파트에서 추락사 하는 끔찍한 사고가 뉴스를 공습했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특수성과 한부모 가정이라는 배경은 상습적인 폭행으로부터 그를 지켜내지 못했다. 수년 간 자행되던 폭행의 사슬을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었고 오히려 폭행에 대한 수위는 점차 높아갔다.

중학생들의 야수적인 죄의식과 잔혹한 폭행 그리고 정신적 고문의 흔적이 보도되면서 과연 우리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조적 자문을 해야 했다.

아이들은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소외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고 인권과 죄의식을 습득하지 못한다. 어쩌면 학교라는 공동체의 와해를 공식적으로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학교는 은밀한 폭력의 수렁에서 이미 자정 작용을 상실했다.

우리 사회 안에 있는 다문화 가정과 성별의 차별, 지역의 양극화 등의 다름은 틀림으로 규정되고 끊임없이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지금, 영화 <원더>는 차별과 이해 그리고 관용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말하고 있었다.

폭행 및 사망 사고를 통해 학교 공동체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하고 누구나 한번 쯤은 박수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학습하는 곳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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