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당신과 나의 도시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사진은 본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 = 권희진 기자)

[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양진호의 엽기적 만행은 마치 영장류의 세기말을 보는 듯”

1. 조 씨 일가 지나가니 양진호가 뒤따랐다.

한때 대한항공 조양호 일가의 ‘갑질’행태로 인해 국민들의 공분으로 전국이 뒤숭숭했던 적이 있었다. 1년도 채 안 된 시간이지만 지금은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이번에 뉴스타파와 셜록이 취재한 양진호 회장의 모습은 이 세상이 인간 악귀로 가득찬 아수라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절망감까지 느끼게 한다.

 

2. 형형색색으로 물들은 양진호의 머리 염색

양진호는 형광색의 염색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쉰이 가까운 나이에 상당히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개성을 혐오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사진 속에 찍힌 그의 회사 직원들은 중년 남성들로 보이는데 그들 또한 형형색색의 염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뒤따라 나오는 그의 엽기 행각이 비하면 이것은 아~주 지극히 정상적일 정도로 그는 상식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었다.

사진은 본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 = 권희진 기자)

3. 공분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파일노리와 위디스크로 양진호는 천 억대의 부를 쌓아 올렸다. 사실 그의 재물은 일명 몰카를 벌법 유통하고 리벤지포르노가 어떠한 제재 없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취득한 재산은 위법적 성격이 짙다.

몰카에 찍힌 여성들인 무차별적으로 유통되는 몰카에 속수무책으로 인권을 유린당했고 아무런 제도적 안전망조차  없이 그들의 피해와 파일노리와 위디스크의 축재의 제물이 되었다. 특히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는 리벤지포르노는 성범죄에 해당하며  인터넷의 허술한 수사망을 악용한 명명백백한 불법 사익 취득물이다.

4. 한국미래기술 워크숍은 “살해 활극”이 난무하는 도살장

양진호의 회사 워크숍은 기상천외했다. 닭을 풀어놓고 석궁이나 일본도로 생명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에 생명의 고통과 죽음에 쾌락을 느낀 양진호는 자신의 회사 직원들에게 살해를 강요했고 그의 엽기 쾌락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강도 높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살아 있는 생명에게 극한 고문을 가했다. 양진호의 한국미래기술 워크숍은 집단 광기마저 느껴지는 ‘살해 활극’이 난무하는 도살장이었다. 날카로운 화살은 닭의 몸을 관통했고 생명은 극한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갔다.

 

5. 양진호의 배후는 누구인가?

사실 인터넷 불법 영상 유출 혐의로 인해 양진호에 대해 회사와 자택을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실시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 사회의 거물이자 괴물로 직원들을 고문하고 동물을 학대해 왔다. 직원을 폭행하고 폭언을 쏟아대는 방송을 통해 국민들은 그의 엽기적인 만행이 허용될 수 있었던 것은 혹시 사이코패스적인 그의 인성이 아니라 그를 비호한 정치권과 기타 자본의 권력층이 존재한다는 의구심으로 번져가고 있다.

의도적인 집단적 관음증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양진호의 몰카와 리벤지포르노 장사는 승승장구하며 막대한 자본금을 바탕으로 로봇 산업에 진출, 사업적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과연 사법권과 관련 기관들은 과연 그의 자본의 영향 아래에서 자유로웠을까?

 

사진은 본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 = 권희진 기자)

6. 양진호의 폭력 , 그리고 침묵하는 직원들

방송에 등장하는 양진호는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한 남성의 얼굴을 강타했다. 타인의 얼굴을 많이 때려본 솜씨처럼 보였다. 한 남성이 울먹이고 맞고 무릎을 꿇을 동안 사무실에 가득한 직원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본다. 한 직원만이 형식적으로 양진호를 말리는 시늉을 할 뿐이다. 그들은 노예였다. 인간성을 포기하고 생활을 구걸하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노예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폭력이 익숙했으며 양진호의 회사에서 삶을 지속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의 모욕을 묵인하고 폭력을 합리화하며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폭력과 고문 그리고 인간 혐오에 동조하는 길이었다는 것을 지금쯤이면 깨닫게 될까?

 

아마도 양진호의 거대한 제국은 곧 파국을 맞이할 듯 보인다.  그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벌어질테고 아마도 사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제국에 동조했던 사람들 또한 사회적 비판과 양심적 가책의 화살이 자신을 관통하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방관했던 한 청년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양진호의 화살에 맞아 피 흘리며 죽어갔던 닭은 병아리의 어미였다. 타인의 슬픔과 생명에 외면했던 본인들의 일자리와 안위를 걱정해줄 사람은 없다. 불의에 침묵하는 당신도 공범일 뿐이니까

누군가 묻는다, 양진호의 회사에서 거액의 연봉을 주면 일 할 수 있겠느냐고. 나에게는 양진호에 대적할 만한 재력도 지위도 능력도 없다. 다만 “악마가 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기 위해 우리는 타인의 폭력 앞에 최소한 도움을 손길을 뻗는 연대와 열애가 필요하지 않을까.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민중이 서로 연대하는 열애말이다.  죽어가는 동물의 고통이 살아 있는 양진호의 삶 속에서 저주로 영생하길 바라며 [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