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조선시대 신분의 귀천은 선비와 농민 그리고 공인과 상인으로 분류되었다. 이는 곧 신분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수 백 년이 지난 지금의 대 민국 사회도 자본으로 규정된 신분 사회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거주지를 토대로 강남과 비강남으로 핵심층에 대한 정의가 정교해졌으며 부동산의 폭등으로 범인은 범접할 수 없는 견고한 아성이 완성되었다.
명절은 친척과 가족으로 엮인 타인들이 삶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차이가 존재하고 차이는 소외와 괴리를 만든다. 친척이 친한 척의 준말이라는 씁쓸한 세태…명절을 행복하게 나기 위해 개인은 반드시 ‘평범한 구색’을 갖추어야 한다. 취직은 했니 결혼은 했니 아이는 있니 등등으로부터 괴로운 타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외로운 섬에서 좌절한다.
‘평범’이라는 괴물은 비단 친한 척을 하는 가족 모임에 국한하지 않는다. 명절의 계층을 극명히 가르는 것은 바로 명절 선물이 아닐까 사회나 회사가 그리고 타인이 보내는 명절 선물 세트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케 해주니 말이다.
김영란법의 정착으로 공무원들의 고급 선물 세트는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오늘 말하려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선물이 아닌 ‘평범한 자와 평범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명절의 구색을 갖춘 선물 속에 녹아든 계층 간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명절 때 만나는 친인척이나 지인들에게 구색을 갖추기 위한 상당의 품위 유지비를 보장받는 직장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청년 50만 명이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많은 급여와 생활의 안락을 위해 많은 시간과 기회비용을 할애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공무원의 명절은 여타의 직업군과 다른 상당한 품위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선 공무원은 두 번의 명절 때 명절 상여금으로 기본금의 60%를 지급한다. 즉 기본급이 150만원이라면 그의 60%의 금액 90만원이 명절을 위해 국가로부터 제공받는다. 물론 근무 기간에 따라 기본급은 늘어나기 때문에 기본급이 늘 경우 상여금도 그것에 정비례한다.
대기업 또한 상여금을 받는다. 삼성전자의 공식 상여금은 월 급여의 100% 정도로, 두 달 치 월급이 한 번에 나온다. 이쯤 되면 명절 상여금의 성격보다 보너스 혹은 성과급의 수준으로 현금 선물을 지급받게 되지만 사실 대기업의 상여금은 연봉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명절 상여금을 명목으로 연봉의 13분의 1을 지급 받는 것이다.
대기업과 공무원의 명절 상여금의 실체를 보면 기존의 급여에 침해 없이 오직 명절을 위한 비용을 보장 받는 직종은 공무원이었고 대기업보다 나은 명절을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상황은 가파른 하락세를 보인다. 명절 전의 직장인들의 한 손에 달린 스팸과 각종 치약, 식용유가 일렬종대로 나열된 필수 생활 용품의 완전체! 선물 세트 하나에 담긴 사업주들의 명절 부담까지 곱게 담아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원의 명절 품위 유지를 위해 주머니를 여는 중소기업 대표들은 교회에서 불교 신자를 만나기를 꿈꾸는 것과 비슷하다.
수 년전에는 김 박스를 선물로 지급하는 업체도 많았다. 내용물인 김보다 포장의 중량감이 월등한 인사치레용 선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스팸햄이 명절 선물의 춘추전국 시대의 최종 승자이자 천하통일 명절 선물이 되었다. 스팸에 금가루라도 바른 것일까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다는 정체불명의 이메일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익숙한 스팸이 아닌, 입으로 들어가는 스팸함과 우리의 고유의 명절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상념에 빠지게 하는 선물이다. 풍성한 가을의 계절 나는 다보탑처럼 쌓아 올린 스팸햄을 보면서 명절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쯤만 되어도 사실 대한민국에서 명절 연휴를 지내는 산뜻한 명절 인사로 갈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세 개의 빨간 날만큼 값진 선물은 없다. 또한 공무원과 대기업 그리고 중소기업과의 격차는 남한과 북한의 GDP만큼이나 크지만 업종(?)의 사이즈의 격차가 비대한 만큼 명절 선물을 정성 평가의 유연한 잣대가 필요하니까. 어차피 명절 선물이라는 것이 법령으로 공표되지 않았고 명절 선물이 개인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부디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게 되는 씁쓸한 현실을 확인 하게 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주지 않은 것만 못하고 명절을 빙자해 개인을 우롱하는 나쁜 선물이 있을까? 있다!
안양의 D제조업체의 경우 70명의 직원 중 약 40%에 해당하는 인력을 파견 업체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 여타의 제조업처럼 탄력적인 인력 조절을 위해 같은 사업장에서 파견업체 직원과 직접 고용의 인원이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
작년 명절 아웃소싱 업체의 업주는 당사 소속의 파견 직원에게 명절 선물을 지급했다. 고작 여자 손바닥 크기만 한 단팥빵 9개가 들어 있는 빵 세트였다. 파견 업체 직원의 수에 맞는 선물이라고 지급한 빵 몇개를 지급받은 직원들은 침울했다. 일부 직원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 채 선물을 고사했다.
다시 D업체의 관리 직원의 말에 의하면 “(파견 업체)사람들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상당히 많은 직원들이 불쾌감을 느끼며 퇴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후 D사의 사주는 파견업체와 정규직 직원의 선물 지급에 차등을 두지 않으며 파견 업체 사주가 별도로 보내는 선물은 전체 직원이 간식으로 나눠서 먹는다.”라고 전했다.
명절 선물을 통해 사회적 계층과 자신의 위치를 확인이 가능한 현실이 불편하다. 누군가는 경쟁 사회의 승자로 일상과 명절의 존재와 품위를 대우받는다. 하지만 중소기업 노동자의 경우 같은 사업장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받는다.
어른 입 하나에 들어가는 팥빵 9개를 명절 선물이라고 지급하는 용역 업체 사업주에게 명절이란 최소비용으로 대충 때워야 할 불편한 빨간 날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팸햄이 쌓아 올린 장벽만큼 높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의 아성이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新 사농공상의 차등적 직업 체계의 존재에 대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경쟁 사회에서 무조건 이겨야 명절날 선심 쓰듯 나눠주는 빵 조각을 통해 좌절과 실패감을 맛보지 않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하며 사회의 평범한 상층부에서 ‘을’의 나락으로 덜어지지 않기 위해 최고의 포식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세상을 대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 아닐까
노동하지 않고 노동자의 임금을 통해 성장하는 아웃소싱 업체는 여전히 성업 중이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며 비정규직은 여전히 근무 중이다.명절 선물로 은밀히 드러나는 계층의 구획을 가벼운 농담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이 상황이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은 암담한 미래 때문이 아닐까[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