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용도가 다 됐으면 폐기 처분해야하는 것 아닌가? 쓰레기 분리수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며느리의 깊은 심연의 발로에 통쾌의 은하 철도를 깔아준 영화 ‘B급 며느리’는 격한 공감과 찐한 만감의 교차를 제공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의 공통분모를 한 남자에 대한 소유권을 지닌다는 것이다. 한 여인은 태생적 소유권과 점유권이 장기간 근저당 설정 되어 있고 한 여인은 공통분모의 사내의 분자 자리에 사뿐히 걸터앉았을 뿐인데 숨어 있는 분모인 친모의 과감한 ‘나눔’과 영향력 아래 위태로운 분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재력이나 상속이 기대되는 경우, 시어머니의 원투 펀치를 감당해야하는 몫은 오롯이 며느리의 몫이 된다. 기대 수익이 발생하는 암묵적 계약을 통해 감정적 입구는 있고 출구는 며느리의 몫이 된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며느리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주위의 여인네들의 경우 대부분 에상 되는 기대 수익에 대한 감정적 수수료를 차곡차곡 제공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반면 기대 수익이 제로에 치닫고 오히려 수명연장으로 인한 시대 손실 발생이 예상되는 시어머니의 경우 상황은 역전된다. B급을 뛰어넘는 며느리의 도덕적 추락을 보더라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모른 척 지나가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렇게 보면 요즘은 며느리의 도덕성 급수나 시어머니의 권위는 경제력이 좌우하는 현실적인 현실에 살고 있다. 만약 이러한 현실의 궤도에서 벗어난 다면 그것은 진정한 B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듯하다.
‘B급 며느리’에서는 “오빠는 오빠 부모님한테는 오빠가 효도해”, “왜 날 존중하지 않아?”라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기를 든다. 물과 효도는 셀프라는 명언을 여과 없이 실천하는 혁명 군사같은 며느리… 그녀의 현실과 유리되고 자아에 도취된 정신세계에 존경과 사의를 표한다.
왜 며느리의 역할에 전도된 나의 자아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표하지 않은 것인가? 며느리라는 여자는 설거지와 전을 뒤집기 위해 눈이 뒤집히도록 자아를 사랑한 것이 아닌데?
젊은 부부는 고부 갈등 때문에 심리 상담까지 받았다. ‘고부 갈등’ 한 남자를 공유한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의 암투는 남자의 영혼을 고향집 처마에 널린 시래기처럼 건조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특수성은 대한민국 가정의 보편성으로 환원된다.
고부 갈등은 암묵적·직접적·과격적인 암초는 대한민국 곳곳에 매설되어 있다. 그 지뢰가 상당히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명절이라는 괴물이 있었으니 바야흐로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커밍 쑨!
며느리는 적절한 자금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시어머니의 주관적 판단과 시누이라는 복병의 자의적 논평에 버무려진 명절이 지나면 대충 며느리의 급수가 정해진다. 누구의 며느리를 얼마를 시어머니에게 쾌척했다더라 무엇을 사 왔다더라라는 카더라 통신으로 당신의 인내심의 한계에 신나를 뿌릴 수도 있다. 오랜 관습과 인습, 구습에 후달린 사회 갈등의 징조들은 부풀려진 ‘카더라 통신’에서 시작된다. 거게어 경거망동하는 시어머니가 있다면?이제 잠재된 B급 며느리는 수면위로 올라올 것이다.
갈등이라 하는 집의 시어머니 혹시 자신의 내면에서 아직 아들을 놓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한다. 대부분은 아들의 결혼을 자신과의 결별로 인식하며 며느리의 신혼을 자신의 졸혼으로 받아들인다. 아들이라는 남자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면을 건드리면 펄쩍 뛰며 부인한다. 격한 부정은 은근한 인정이라는 것!
결혼 하면서 부지런히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배달하는 시어머니의 정성을 분석한 적이 있다. 내 아들의 한 끼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정성의 근거는 며느리에 대한 불신이 아닐까라는 오해가 이식되었다. 결론은 이것이다. 내 시어머니는 내 남편을 아직 놓아 주지 않았다.
시댁이라는 울타리에서 겪는 미묘한 갈등의 노선은 부부갈등으로 불시착한다. 시댁이라는 온갖 잠재된 갈등 요소와 법적인 인간관계로 맺어진 설정적 가족 구도에 지친 며느리의 영혼을 위로해 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 엄마 좋아”라는 온정적 선입견(?)과 시댁 식구에 대한 맹목적 방어는 결국 B급 며느리의 재림을 공표하게 된다.
“우리 엄마 좋아”라는 남의 편인 남편과의 감정싸움은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이전투구로 변한다. 시어머니가 영원한 내 편인 누군가의 남의 편을 과감히 손절매 하는 지혜만이 고부갈등과 부부갈등의 대명사 ‘명절 대전’의 굴곡진 역사를 끊고 새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