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입니다

 

태극기(사진제공= pixbay)

1919년 3월 1일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참여한 항일독립운동이다. 흔히 3·1운동으로 불리며 대표적인 인물인 유관순은 3000명의 천안, 청주, 진천 등지의 학교와 교회를 방문해 만세운동으로 알려졌다. 3·1운동과 두 번째로 버금가는 규모로 진행된 항일독립운동이 바로 1929년 11월 3일에 시작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내린 일본인 중학생들이 대한민국 여학생들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한 점과 며칠 뒤인 11월 3일 일제로부터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기미가요와 신사참배를 강요당해 대한민국 학생들의 반일감정이 폭발해 일제에 대항하는 학생운동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에 있어 1929년은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지 20년이 되던 해로 당시 일본의 조선 우민화 정책을 통해 정치·문화·교육 등에 관심을 두지 못하도록 한국어 대신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을 강요, 한국어 신문과 책 출판 금지, 신사참배 강요 등 대한민국의 민족성을 말살하는 계획으로 인해 일제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다.

1929년 11월 3일 시작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광주고보 출신의 장재성을 필두로 광주고보, 광주농고 등의 학생들이 애국가와 응원가를 길거리 시위를 벌였다. 이후 광주학생들은 경찰에 의해 검거, 무기정학, 퇴학 조치 등을 일제로부터 당하면서도 일제에 저항했고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시위를 계속 벌였다.

학생 독립운동이 커지는 것을 우려했던 일제는 언론을 통제해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감추려고 했으나 막지 못했다. 이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으로 학생독립운동은 확대 발전되었고 다음 해인 1930년 3월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대한민국이 일제에게 당한 잔혹했던 기억은 현재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통해 당시 학생 독립운동의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

3·1운동에 비해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날이다. 3·1운동에 버금갈 정도로 대한민국 역사에 중요한 역사였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국정감사 등 큰 이슈에 밀려 인식하지 못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3·1운동은 매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에 노출될 정도로 유명하지만 11월 3일 학생 독립운동 역시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인 만큼 대한민국 국민이 역사에 관심을 두고 이를 제대로 알고 기념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