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삼복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8월 중순이 가까워지는 시점에도 극장가에서는 그 흔한 공포영화의 개봉이 뜸하다. 이럴 때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고전 공포영화를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도 추천할만하다. 말이 나온 김에 ’90년대 말 잠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의 감상을 돕고자 한다.
영화의 제목인 ‘이벤트 호라이즌’은 우주선의 이름이다. 중력 엔진으로 웜홀을 통과하여 공간을 넘나들 수 있게 설계된 우주선이며, 그러한 기능 때문에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지옥을 다녀왔다는 설정을 전제로 한다. 수년 동안 행방불명이었던 우주선이 해왕성 근처에 표류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구조선이 떠난다. 구조선은 이벤트 호라이즌 호와 도킹하며, 이벤트 호라이즌 호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 영화의 전부이다.
이 영화는 두 가지 방식으로 관객을 자극한다. 하나는 시각적 자극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 압박이다. 이벤트 호라이즌 호를 조사하는 대원들은 각자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이벤트 호라이즌 호에서 떠도는 악의 기운은 각 대원의 아픈 과거를 건드리면서 서서히 늪으로 빠트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끔찍한 죽음이 이어진다.
아마도 폴 앤더슨 감독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지옥’을 영화라는 매개체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차원을 초월해 지옥을 다녀온 우주선이 존재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지옥을 연출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가 영화 전반에 걸쳐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감독이 표현한 지옥은 극도로 끔찍하다. 단순하게 끔찍한 수준이 아니라 잔인하고 역겨운 수준이며, 그 중심에는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설계자를 연기한 배우 샘 닐이 존재한다. 단, 시각적 자극이 때로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 수준이라는 점은 확실히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조차도 제작사에서 20~30분가량을 편집한 분량이다. 원본의 분량을 감안하면 도대체 얼마나 지독한 연출을 원했던 것인지 추측이 어려울 정도이다.
필요 이상의 시각적 자극 때문에 개봉 당시에도 워낙 말이 많았지만,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은 2000년대에 ‘데드 스페이스’라는 게임을 비롯한 몇몇 콘텐츠에 영향을 주었을 만큼 파급력이 있던 작품이다. 20년이 지났지만, 심리적 공포와 시각적 공포를 동시에 맛보고 싶을 때는 아직도 이만한 작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