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낮 12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여성들이 집결했다. 가면과 마스크를 쓰고 ‘여성 혐오 살인 공론화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100여 명이나 되었다.
이들이 모여서 한목소리를 낸 계기는 7월 5일 벌어진 ‘왁싱샵 살인 사건’이다. 한 남성이 단독으로 일하는 여성의 왁싱샵에 찾아가 여성을 성폭행하려 하고 살해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집결한 것이다. 이들은 직장에서조차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해야 하느냐는 규탄의 목소리를 냈으며, 제2의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규정짓는 이도 있었다.
이런 움직임은 늘 신중하게 바라보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단언컨대, 나는 집결자들의 이번 행보는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끔찍한 살인 사건은 때로는 공론화할 필요가 있지만, 이런 문제를 남녀 사이의 문제로 판단하려고 하면 합당하고 명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신체적 또는 물리적 강자와 약자 사이의 구도로 접근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을 남녀로 구분하는 전제부터 완전히 잘못되었다. 물론, 남성이 여성보다 물리적으로 강자일 때가 많으므로 남성 범죄자가 더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린이와 성인 여성 사이에서는 대체로 성인 여성이 물리적 강자이기 때문에 여성 범죄자도 있다. 그들도 같은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성의 구별보다는 신체적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보는 게 훨씬 논리적이다.
다짜고짜 ‘죄가 없는 여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가 진정한 사회악’이라고 몰아가는 행동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남자만 악한 존재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한 물리적 힘을 보유한 이가 약자를 괴롭히는 현실을 규탄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남성’이라는 집단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고 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도 없다.
여성 혐오, 남성 혐오 등 특정 집단 전체를 손가락질의 대상으로 단정 짓는 이른바 ‘혐오 문화’는 최근 수년 사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매개체로 급속하게 퍼졌다. 이제는 워낙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사여서, 때로는 심각성을 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혐오 문화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강남역 집회처럼 잘못된 전제를 통한 접근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는지도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