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한 내용입니다.
420년 전 정유년 1597년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왜군을 대파하는 기적을 쓴 해이다. 2017년 정유년을 맞아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이순신 장군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가 전해질지 기대가 된다. 먼저 <1부 – 청년 이순신>이라는 주제로 이순신 장군의 장군이 되기까지의 삶을 들어보겠다.
Q. 이순신 장군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나요
A. 저는 조선 인종 1년(1545) 3월 8일 서울 건천동(지금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습니다. 4형제 중 셋째 아들이었는데, 두 형은 이희신, 이요신이고 동생은 이우신입니다.
비교적 순조롭고 성공적인 출세를 이어왔던 가문은 조부 때부터 침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조부 이백록과 아버지 이정 모두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고, 당연히 벼슬길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에 제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뛰어난 인물을 만났습니다. 그는 나중에 영의정이 되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입니다. 서로 세 살 차이인 우리는 그 뒤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국난에서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각각 문무에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과 모여 놀 때면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 동리에서 전쟁놀이를 했습니다.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눈을 쏘려고 하는 지나친 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도 저를 꺼려 감히 군문 앞을 지나려고 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죠. 자라면서 활을 잘 쏘기 위해 활 연습을 쉬지 않았으며 무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가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말 타고 활쏘기를 잘 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글씨를 잘 쓰는 편이었습니다.
Q.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기개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장군이 되려고 하셨습니까?
A. 어릴 때부터 무인의 자질을 보였지만 아버지의 바람으로 문과 응시를 준비했습니다. 10세 전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보면 10년 정도 문학을 수업한 것이죠. 하지만 과거시험은 어려웠고 혼인 1년 뒤 장인의 충고로 무과로 방향을 바꾸어 본격적으로 무예를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28세 되던 해에 비로소 무인 선발시험의 일종인 훈련원별과에 응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치르던 중 타고 있던 말이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었죠. 물론 낙방했지만, 다시 일어나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다친 다리를 싸매고 과정을 마치며 의지를 다졌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에 낙방에 낙방을 거듭한 뒤에 1576년(선조 9) 2월 식년무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했습니다. 무장으로서 공식적인 경력은 이때 시작되었습니다. 제 나이 31세였으며, 임진왜란을 16년 앞둔 시점이었죠. 일생 전체가 그러했지만, 이때부터 부침이 심하고 순탄치 않은 관직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어린 시절부터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군으로서 성장하는 시작점도 평탄치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진행될 이순신 장군의 가상 인터뷰 2부, 3부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참고자료: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