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취업뽀개기’라는 카페에 가입한 적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동기들은 경쟁자에 다름 아니며 교수님들은 상아탑에 갇혀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선배들은 저 살기에도 바빴다. 우석디자인학원 강남점 오병권 원장을 취재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취직하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걸.”하고.
42년전통의 우석디자인학원은 VMD, 인테리어디자인,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영상디자인, 웹디자인 등 디자인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학원이다. 이 학원의 오병권 원장은 학생들이 면접보기 전에 학원에 미리 오라고 당부한다. 옷차림을 점검해 주기 위해서다. 그의 학생들은 매달 새로운 이력서를 만든다. 그에게 있어 이력서도 자기소개서도 디자인의 일환이다. 수시로 만들고 점검한다. 한번이라도 더 면접을 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다.
상담예약을 마치고 학원에 들어서면 누구나 오병권 원장과 맞춤상담을 한다. 얘기가 한 시간에서 두 시간 동안 이뤄진다. “얘기하다 보면 뭘 하고 싶은 건지, 정말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있어요. 본인의 욕구를 끌어내줘요. 취업이나 진학에 관한 정보를 주고요.”
입학을 결정하면 사진을 찍고 달마다 관리가 들어간다. 매월 취업스터디를 가진다. 이곳에서는 취업에 관한 건 뭐든 배운다. 이력서 쓰는 방법, 회사를 찾는 방법, C/S교육 등등. 해외로 취업을 원하면 해외인턴십을 제안한다. 수많은 학생들이 벌써 오년째 이 과정을 통해 해외에 취업하거나 그 경력을 살려 국내에 취업했다. 만약 전직을 고민하고 있다면 다시 학원을 찾는다. 이직까지 책임지기 때문이다. 집요하리만큼 사후관리가 철저하다. 이 때문에 졸업생들이 자주 학원을 찾는다.
대학에서 공예디자인을 전공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재직했던 오병권 원장. 그는 어쩌다 이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일까.
“학생들을 만나 강의를 하는 게 적성에 맞았어요. 처음에는 실무에 있었고 자격증이 있다뿐이지 합격의 묘는 알지 못했죠. 강의가 끝나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학생들과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자연히 노하우가 축적되고 합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책을 내게 됐고 학원가에 이름이 알려지며 차츰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42년 전통의 우석디자인학원의 원장. 그러나 지금도 학원장이기보다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다. 매일 아침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들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출근한다.“저보다 불과 두 살 어렸던 학생이 있었어요. 초창기 학생이죠. 이제는 인테리어 회사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죠. 십 년 된 사이에요.”
오병권 원장은 학원 규모를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강의당 정원이 일곱 명밖에 되지 않는다. “마이크로 수업하는 그런 강의는 하고 싶지 않아요. 크게 가는 것보다 각각의 학생을 책임지며 가고 싶어요.” 그의 신념처럼 우석디자인학원은 소수정예를 지향하며 총 학생 수가 백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인테리어,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등의 분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가 강의하는 실내건축의 학생은 총 스무 명으로 한 강좌 당 일곱 명씩 수업을 듣는다. 단체강의에서는 각각의 학생들의 문제점이나 고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학원의 몸집을 불리는 건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스크린 수업이 아니고 1:1수업이에요. 샤프를 들고 다니면서 직접 그려주죠. 그룹과외 같은 느낌이에요. 포트폴리오도 맞춤으로 하나하나 개성을 반영하는 게 가능하죠.” 그는 학원에 처음 온 학생에게 컴퓨터를 들려주지 않는다. 모든 수업은 손으로 이루어진다. 아이디어 스케치의 중요성을 언제나 강조한다. “드로잉북은 언제나 몸에 있어야 해요. 수작업을 우선시하죠.”
이런 고집스런 경영에도 불구하고 실무도 겸하므로 경영적인 어려움은 없다. 우석디자인 학원의 선생님들은 모두 수업만 하는 게 아니라 실무 인테리어도 한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수업에만 매몰되면 도태되는 경우가 생긴다. “매년 두 배 이상 성장하고 있어요. 모든 학생들이 취업하죠. 백퍼센트.”
실제로 디자인 분야의 전망은 매우 밝다. 디자인팀이 없던 기업도 신설하는 경우 많아졌다. 특히 공사라는 인식이 강했던 인테리어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공간코디’가 부상하고 있다. 공간코디는 말 그대로 공간을 꾸며준다는 성격이 강하다.
또 다른 장소에 비슷한 규모로 학원을 개원하는 게 목표라는 오병권 원장. 지방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고픈 마음 때문이다. “열정만 있다면 스케쥴과 커리큘럼은 학원이 제대로 제시해줍니다. 십 년 후 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러기 위해서 오 년 후 삼 년 후 일 년 후에 내가 어떠해야 할 지 생각해 보세요.” 디자인을 배우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랐던 학생들에게 오 원장이 주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