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여성의 옷차림과 얼굴표정 등 세세한 부분까지 당시 현장상황이 자세하게 떠오릅니다” 어느 여성소방관의 고백이다.
8년 전에 처음 목격한 동갑내기 여성의 자살모습에 아직도 괴롭다고 했다.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다른 소방관은 매일 옷을 소독하고 몸을 몇 번씩이나 씻는 날도 있다. 결벽증 증세다.
근무를 마치고 접촉한 위급환자들의 병균이 혹시라도 자기 자녀에게 옮을까봐 그런다고 했다. 동료소방관이 순직하는 장면을 목격한 소방관 중에 한동안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거나 안타깝게도 퇴직을 해버리는 사례는 많다.
소방관들이 화재, 교통사고, 익사, 자살 같은 끔찍한 장면을 경험하고 나서 참혹한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아 공포감과 무력감에 온몸을 떤다. 이른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이다. 충격적이고 끔찍한 사건·사고현장을 자주 접하다 보면 면역이 생길법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안과 관련대책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근무하지 않는 날 당연히 자연스레 술을 마시고 대인기피증으로 집안에 은둔해 지내기도 한다. 아내나 자녀를 향해서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하거나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2011년 자살한 소방관 3명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가족 말고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중앙소방학교에 따르면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의 약 13%가 정신질환 수준의 우울증 증세를 갖고 있으며 최근 통계자료를 보더라도 자살한 소방관이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보다 많았다.
미국의 경우 사건·사고를 목격한 소방관은 3일 이내에 정신건강과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일본 또한 소방서마다 정신건강과 의사와 심리치료사를 배치하고 있다. 끔찍한 사고현장을 다녀온 소방관은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위의 경우처럼 의무적으로 스트레스 상담을 받게 하고, 소방관 건강과 심신안정 관리를 위해 전문가들로 힐링센터를 구성해 PTSD예방 및 장·단기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급휴가와 충분한 보상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공무를 수행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대원에 대한 치료는 기간을 제한하지 말고 완치가 될 때까지 충분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예우해야 한다. 인천소방안전본부에서는 전국소방 최초로 PTSD에 관한 집중적 관심과 예산의 뒷받침으로 소방대원들을 관리하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