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배우 이병헌이 영화 ‘내부자들’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무대에 오른 이병헌은 “53년이라는 긴 시간 명맥을 유지하고 명예로웠던 시상식이 불명예스럽게 이대로 없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라 생각한다”며 대종상 영화제를 향한 소신있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배우로서 작품으로 만나는 이병헌은 늘 최고다. 액션, 스릴러, 멜로 등 장르 구분 없이 늘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섰다. 스캔들 파문으로 인간 이병헌에게 최고의 위기가 찾아왔지만 결국 연기가 그를 살렸다. ‘내부자들’로 화려하게 비상한 후 ‘밀정’에 이어 ‘마스터’로 관객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스터’는 금융 사기꾼 진현필(이병헌)과 그를 쫓는 경찰 김재명(강동원)의 대결을 그린 범죄 액션 영화다. 이병헌은 극 중 진현필로 출연해 개성 넘치는 악역을 완성했다. 진현필은 자신의 측근조차 믿지 않는 캐릭터지만 상황에 따라 빈틈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빈틈은 유머가 되어 관객을 웃긴다. 이병헌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능숙한 연기로 가볍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은 악역을 완성했다. 이병헌은 “가벼운 오락영화 안에서 진현필이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제 예상과 다르게 너무 가벼운 영화였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고 선뜻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죠. 진현필은 실제 다단계 사기를 친 조희팔에서 만들어진 인물이에요. 영화지만 굉장히 사실적인 이야기죠.
그래서 조희팔의 외모를 따라해야 할지 아니면 다르게 만들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실제 조희팔에 대한 자료를 참고만 하고 많은 부분은 영화에 맞게 재창조했죠.”
이병헌에게 가장 중요한 장면은 극의 시작을 알리는 진현필의 투자 연설신이었다. 진현필이 사기꾼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을 알 수 있는 장면이자 동시에 관객이 이병헌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는 첫 순간이다. 이병헌도 그 장면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이야기한다.
“사기꾼이라면 결국 믿음을 주는 사람이에요. 진현필의 능력이 첫 장면에서 드러나죠. 극 중 진현필을 외치는 사람처럼 관객도 ‘나도 속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포인트였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그 장면이 길어요. 자칫 지루할 수 있었지만 차마 줄일 수 없는 중요한 장면이죠.”
시나리오가 이병헌에게 왔을 때 캐스팅은 열려있었다. 당시 진현필과 측근 박장군(김윈), 그리고 김재명 역을 할 배우가 모두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배우 강동원이 김재명 역으로 먼저 출연 확정을 지었다. 진현필과 김재명 사이에서 고민을 하던 이병헌은 남은 진현필을 선택해야 했다.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둘 다 매력적이었어요. 굳이 따지자면 계속 어떠한 상황에 처하며 변화를 주는 진현필이 좀 더 끌렸죠. 결정을 못하고 둘 사이에 고민하던 중 동원이가 먼저 김재명 역으로 캐스팅됐다고 들었어요.
그땐 제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그리고 조금 있다가 우빈이가 합류하게 됐고요.”
영화는 진현필과 김재명이 이끌어가지만 실제 두 캐릭터가 만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주로 경찰에게 꼬리를 밟힌 박장군이 둘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동원이 보다 우빈이와 주로 호흡을 맞췄어요. 우빈이는 카메라 앞에서 잘 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깨에 힘 빼고 정말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주더라고요. 그게 굉장히 보기 좋았어요.”
배우로서 목표를 묻자 어김없이 ‘그런 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목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같은 대답을 해요. 예나 지금이나 계획을 세우고 배우 활동을 한 적이 없어요. 그저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를 찾아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를 해 왔어요.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도 새로움이 이유였어요. 그것이 영어와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뛰어넘었죠.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