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개봉한 이선균-김민희 주연의 영화 화차(火車). 주인공 장문호(이선균 역)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약혼녀(김민희 역)의 행방을 찾기 위해 그녀의 주변을 탐색하던 중 수년을 사랑해 온 그녀가 이름부터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가족, 경력 등 모든 것이 다른 여자의 것임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지게 된다.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약혼녀는 잘 자란 여성을 살해하고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 살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내용이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이다.
지인들과의 친목 도모와 일상 사진 공유 등을 위해 활발한 SNS활동을 하는 평범한 한 20대 회사원 A씨. 그녀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혹시 SNS 계정이 두 개냐?”라는 연락을 받았다. 단순한 지인들과의 공유 목적이 전부였기에 단 하나만의 계정을 운영하고 있던 그녀에게 있어 친구의 질문은 다소 황당하게 다가왔지만, 친구로부터 받아 든 SNS 주소에 접속해 본 A씨는 당혹감과 공포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SNS가 아님에도 해당 계정의 프로필은 A씨 자신의 사진이었고, A씨 자신의 SNS에 직접 올린 사진들은 고스란히 누군가에 의해 ‘의문의 SNS’에 버젓이 게시되어 있었다. 분명 이름도, 사진 속 모습도 자신이 맞았음에도 정작 자신은 계정의 존재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A씨는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의문의 SNS’를 찬찬히 살펴봤다.
해당 SNS에는 A씨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A씨로 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해당 글에는 A씨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놓고 있었고, A씨가 친구들과의 휴가지에서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그대로 올려둔 사진에는 심지어 알지 못하는 남성들의 성적인 희롱이 담긴 댓글도 작성되어 있었다.
A씨는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SNS와 의문의 SNS를 비교해 본 결과, A씨가 글을 올린지 2~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같은 사진의 내용과 글이 의문의 SNS를 통해 게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의문의 SNS를 운영하는 누군가는 항상 A씨의 SNS를 염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A씨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자신의 일상을 항상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결국 자신의 SNS와 의문의 SNS의 화면을 캡쳐하여 증거자료를 혹보한 후 다음 날 경찰서를 방문했다.
그러나 A씨의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 측은 “신고 접수가 어렵다”는 답변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명백한 증거가 있을 뿐 아니라 이번 사건으로 인해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은 A씨는 경찰의 신고 접수를 촉구했으나 경찰에서는 “신고를 근거 할 만 한 법 조항이 구체적으로 없어 신고는 어렵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즉, 형사처벌이 불가능 할 뿐 아니라 이를 도용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 데 있어 사법기관의 도움조차도 받기 어렵다는 것. 이에 A씨는 할 수 없이 아무런 소득 없이 경찰서를 돌아 나와야 했다.
결국 이 ‘의문의 SNS’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던 A씨는 자신을 사칭한 또 다른 A씨에게 해당 계정을 삭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도용 발견해도 관련법 마련되지 않아 처벌 어려워
한편, 이 같은 피해는 비단 A씨의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1인 1스마트폰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국민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SNS 사용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누군가를 도용하여 마치 ‘자신의 삶’인 양 활동하는 사람이 다수 생겨나고 있다. 이를 도용한 사람은 단지 타인의 사진이나 글을 자신의 것인 것처럼 게시하다가 이가 발각될 경우 단순히 계정을 삭제하는 등 간단한 ‘놀이’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를 도용당한 사람은 하나의 ‘피해자’로서 알 수 없는 타인에게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되고 이가 그들의 가십거리로 오르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신적인 피해가 상당한 실상이다.
그러나 도용당한 피해자들의 이렇듯 정신적 피해가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이를 처벌할 명확한 법적 근거는 마련되어있지 않은 상황. 이렇게 때문에 피해자들은 상대방이 자진해서 계정을 삭제하지 않는 한 이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처벌도 받게 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법적 처벌을 근거로 하는 형법에도 ‘타인을 사칭하거나 상대방을 기망해 이득을 취할 경우 사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만 규정될 뿐 단지 ‘사칭’하거나 ‘도용’만을 한다 하여 이를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어떠한 조항도 마련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도용당한 피해자들은 상당한 정신적 피해에도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이다.
특히 현재 활성화 되어 있는 가장 인기 있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SNS는 외국에 본 서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국내 경찰이 수사를 진행한다 해도 쉽지가 않은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유명 연예인이나 공인 등을 사칭하여 개설된 계정으로 도용 현상이 심각하지만 사실상 이를 처벌할 수 없는 것은 이렇듯 처벌을 근거할 만한 법규나 제도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일례로, 지난 2015년에는 인기 개그맨 유재석 씨를 사칭한 SNS가 생성되었고 심지어 이 SNS를 통해 유 씨를 사칭한 누군가는 마치 자신이 유 씨 인 것처럼 사진을 게시하고 촬영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는 등 일부 네티즌들로 하여금 ‘진짠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이를 믿는 팬들로 하여금 자신이 유 씨인 것처럼 메시지를 주고받는 등의 행동을 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유 씨가 아니었고, 유 씨가 기획사를 통해 ‘SNS를 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후에야 해당 SNS가 폐쇄 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칭 및 도용 범죄의 또 다른 양상으로는 청소년 사이의 ‘사칭 놀이’를 또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는 범죄로 보기에는 다소 어렵지만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할 청소년 시기에 정체성 확립을 저어하는 등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사칭 놀이’란 청소년들이 인기 아이돌의 역할을 맡아 SNS를 개설하고, 이를 통해 다른 아이돌 가수를 도용한 또 다른 ‘가짜 아이돌’과 친구를 맺으며 SNS 속의 연인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가수를 향한 팬심이라는 생각으로 하나의 ‘놀이’로 인정했지만 이 것이 ‘놀이’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대들 사이의 정체성 확립을 저어하고 범죄로 이어지는 실례가 있어 이 또한 하나의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015년 2월 중순에는 경남 모 중학교에서 여성 아이돌 A양을 사칭한 심 모(15)양이 남성 아이돌 B군을 사칭한 진 모(15)군과 SNS 상에서 연인 관계로 지낸다는 이유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실제 B군의 팬인 동급생 9명이 심 양을 집단 폭행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히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듯 SNS 상에서 ‘사칭’이나 ‘도용’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로, SNS의 비실명제를 이유 중 하나로 들 수 있다. 대부분의 SNS는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실명으로 가입해야 하는 국내 포털 사이트와는 달리 본인 인증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타인의 가명으로 가입이 가능하고 자신의 실제 신분 노출이 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화 될 뿐 아니라 직업 상 가명 사용, 보다 쉬워진 개명 등 때문에 가입 후에도 보여지는 이름을 수시로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도용’이나 ‘사칭’이 쉬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획일적인 가치만 인정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와 고학력, 고수입 직업 등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단순하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나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이 같은 도용 현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자신의 삶이 그러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SNS를 통해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삶을 도용하고 이 것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다 보면 그 누군가는 외모지상주의 등 사회가 요구하는 평가 잣대를 들어 자신의 삶보다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리만족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이란, 멋지고 예쁜 외모와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 등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타인에게 보여 지는 SNS를 통해 이 같은 욕구를 간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상황이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타인의 삶을 도용하고 사칭하는 행위가 단순한 ‘장난’이나 ‘놀이’에서 하나의 사회 문제가 된 만큼 더 이상은 이를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사칭해 자신의 삶으로 인지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 속의 나’와 ‘사이버 공간 속 또 다른 나’가 현실에서 충돌해 혼란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즉, 과거 게임 속 캐릭터가 자신이라 생각하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칼부림을 한 과거의 사례 속의 가해자가 사회로부터 뭇 매를 맞은 것과 ‘사칭’이나 ‘도용’과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할 만큼 이는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함은 물론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SNS가 급격하게 활성화 되면서 개개인의 사생활이 쉽게 노출된다는 점은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지만, 이러한 문화가 사회 문제를 야기 하고 있는 만큼 이를 단순한 ‘문화’로만 보는 시선은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남의 삶을 염탐하고 또 이를 도둑질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으며, SNS를 통해 타인이 올린 게시물을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의식, 자세, 그리고 올바른 SNS 사용법을 갖춰야 할 것이다. 급속도로 SNS가 활성화 되면서 이 것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이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활용하는 방법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물질 만능주의와 외모 지상주의 등을 토대로 한 평가 잣대가 기본 의식으로 뿌리박힌 만큼 이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을 변화시키려 섣불리 노력하기 보다는 올바른 사용법을 인식하는 다각적인 사이버 교육을 활성화 시키고, 관련된 법 조항을 신설하여 보다 강한 법적 제재를 통해 이 같은 일이 얼마나 큰 범죄가 될 수 있고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안겨 주는지에 대한 인식을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