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과는 조금 다르게 저녁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명동 파지 작업. 생계를 위해 첫 한파주의보 속에서도 찬 바람과 맞서야만 했던 손경호씨(60·남)를 만나봤다.
“다들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내 파지인생 10년 중에 지금처럼 힘든 적은 처음이란 말이지”
현란한 네온사인. 한껏 상기된 표정들의 시민들이 들뜬 발걸음을 옮기는 명동 한복판에서 파지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손경호씨(60·남)를 만났다. 앞부분을 터 많은 파지를 담을 수 있게 손수 개조한 리어카와 핸드카를 끌고 나타난 손씨는 추운 듯 몸이 한껏 움츠려 있었다.
종로 청계천 인근 집에서 저녁 6시30분쯤 나와 다음날 새벽 4시까지 파지를 줍는다는 손씨. 일주일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명동에 도착하는 시간인 7시30분부터 장작 8시간 30동안 일을 한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쉴수가 없어요. 하루라도 쉬면 그게 당장 생계로 이어지거든. 방세내고, 공과금내고, 어디 아파 병원이라도 갈라치면 쉴수가 없지”라며 손사래를 쳤다.
“명동에서만 10년이 넘었지. 아마 이 부근에선 내가 제일 오래 됐을 거야”
손경호씨가 명동에 자리를 튼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손씨는 인생의 한 때를 명동과 함께 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날이 너무 춥고 돈벌이도 안되니까 파지꾼이 많이 줄었어. 6~7명정도 밖에 없으니까. 그 사람들 중에서 내가 제일 오래됐으니 나도 참 오래했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던 손씨는 조금 멋쩍은 듯 추워서 부르튼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곤 했다.
“1kg당 70원이야. 내 파지 인생 10년중에 지금처럼 힘든 적은 없었어”
얼마전까지만 해도 1kg당 120원까지 올랐던 파지 가격은 현재 70원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파지 줍는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특히 겨울에는 박스가 무거우니 땀은 계속 나는데 바람은 차니까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춥단 말이야” 손씨가 새벽 내내 이렇게 일을 해도 손에 쥐어지는 돈은 단돈 3만원. 뼈속까지 스며드는 칼바람과 맞선 대가치곤 너무 적은 액수다.
“그나마 나는 괜찮아. 명동에서 일한게 오래돼서 박스가 나오면 불러주는 매장들이 몇군데 있거든. 근데 길거리에서 박스 한두개 주워 파는 노인 양반들은 하루에 버는 돈이 1000원도 안돼. 그 사람들은 먹고 사는게 막막한거지”
“적어도 1kg당 100원은 나와야 먹고 사는데 지금은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어”
사실 파지는 경기 침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 중 하나다. 경기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파지 가격은 10원, 20원씩 가격이 떨어진다.
“1kg당 100원이 최하 가격이야. 그것마저 안되면 차라리 안하는게 나아. 고철은 더 힘들어서 요즘은 돈을 받고 치워주는 일도 생긴다니까”
새벽 4시까지 파지를 줍고 종로 3가에 있는 고물상에 팔고 나서야 그날 하루가 끝이 난다는 손경호씨. 인터뷰를 마치고 9시가 다 돼서야 돌아서는 그의 수레는 여전히 빈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