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코리아 박은혜 칼럼니스트]
4차 산업혁명은 과연 실재일까 허상일까.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17년 5월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대학교수와 연구원을 포함한 2,350명의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이 조사의 결과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4차 산업혁명이 2016년 1월에 열린 다보스 포럼을 필두로 하여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같은 해 3~5월에 걸쳐 있었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의 세기의 바둑 대결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대중들에게까지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설문조사는 그로부터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잘 읽어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가
서울대학교 과학기술학 교수인 홍성욱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가령 2017년 3월 <매일경제> 신문은 겨우 한 달 동안에 걸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를 무려 400여 건이나 쏟아냈다고 하니, 그 분위기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무려 89%의 과학계 종사자들이 ‘매우 그렇다’(52%) 혹은 ‘약간 그렇다’(37%)라고 답했다. 일각에서 4차 산업혁명이 허상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4차 산업혁명은 우리 과학계에서 사회적 실재가 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결과였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압도적인 비율인 96%가 ‘매우 있다’(65%) 혹은 ‘약간 있다’(31%)라고 답했다.
이 설문조사보다 8개월 정도 앞선 2016년 10월의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래 전문가들 중 75명이 ‘4차 산업혁명이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5년 내로 올 것이다’라고 전망하고 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4차 산업혁명은 가까운 미래에서 곧장 현재진행형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홍성욱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여기에는 분명 과학기술의 내부적인 변화보다는 외부의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4차 산업혁명이 빈부격차를 심화시킬까?
우리나라 과학계 종사자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는 달리, 또 다른 흥미로운 조사도 있다. 같은 5월에 국민일보에서 보도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했던 대국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이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다’라는 항목에 대해 일반 국민들 중 무려 85%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다’라는 항복에 대해서도 90%의 국민들이 동의를 나타냈다. 82%의 응답은 ‘4차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혜택을 줄 것이다’라는 데에 긍정했음에도 불구하고, 76%의 응답은 ‘4차 산업혁명이 나에게는 위협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데에 동의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과학계 종사자들과 일반 국민들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인식이 상반되어 나타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일반 국민들에 비해, 4차 산업혁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훨씬 더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일반 국민들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실업 위기가 증가할 것이라 생각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과학자들은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다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시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낙관적 관심과는 별도로, ‘4차 산업혁명이 국가적 아젠다로서 유용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바람직한 정책이다’라는 대답이 절반도 되지 않는 43%에 불과했고, ‘더 구체적인 개념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31%, ‘글로벌한 개념 정립이 이루어진 이후 정책적인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응답이 20였다. 즉, 4차 산업혁명을 국가적 차원에서 주도해 나가는 분위기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긍정보다는 유보 혹은 비판의 관점을 더 많이 드러낸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결국,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충분히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점에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앞서 소개한 2016년 10월 문화일보에서 보도했던 설문조사의 또 다른 항목들을 통해서도 흥미롭게 드러난다.
당시 문화일보의 설문조사가 대상으로 삼았던 미래 전문가 100명에는 국내 30대 기업, 20개 스타트업, 한국연구재단의 이달의 과학자상 수상자 20명, 기타 교수 및 연구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에게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선진국의 수준을 100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수준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은, 우리나라의 준비 수준이 65.9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60점 혹은 70점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50점 이하라는 답의 비율도 적지 않았다. 반면에 80점 혹은 90점이라는 응답의 비율은 현저히 적게 나타났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주요 기술들을 세분화하여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ICT 및 사물인터넷 기술은 64점, 인공지능 기술은 58점, 빅데이터 기술은 22점, 전기자율주행차 기술은 매우 낮은 19점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그보다 2년 전인 2014년에도 이와 유사한 조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학기술기본법에 근거하여 2년마다 실시하는 과학기술수준평가의 2014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일한 내용의 기술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점수는 65.9점을 훨씬 상회하는 75~84점 사이에 분포했다는 사실이다. 가령 빅데이터 기술은 78.4점, 사물인터넷 기술은 77.7점, 지능형 로봇 기술은 74.8점 등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왜 동일한 기술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평가가 2014년과 2016년 사이에 큰 격차를 보여주는 것일까? 또한 왜 2년 후의 결과가 2년 전의 결과보다 더 낮은 점수를 보이는 것일까? 여기서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것은, 2014년은 2016년과는 달리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아직 유행하지 않았을 때라는 점이다.
결국 이러한 조사 결과에서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매우 실제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유행하기 이전에는 충분히 발전했다고 자신했던 기술들이, 4차 산업혁명의 유행과 더불어 무언가 준비가 덜 된 것 같고 뒤쳐진 것 같다는 부담감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이러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한 마디로, 4차 산업혁명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에 무겁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변화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과학자 사회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시민 사회와는 거리가 먼 것도 아니다. 과학자 사회와 시민 사회가 함께 받아들이고,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기술만 발전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을 담아내는 우리 사회가 보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사회로 성숙할 수 있어야, 4차 산업혁명의 진정한 혜택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