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코리아 박은혜 칼럼니스트]
산업혁명이 남긴 숙제와 죄책감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것, 이것은 산업혁명의 한계점으로 남는 부분이다. 4차 산업혁명뿐만이 아니다. 1차부터 3차까지, 각 산업혁명은 발전과 성장, 편리함 대신 인간 소외 문제라는 화두를 남기곤 했다. 그런 일종의 피해의식 때문인지, 4차 산업혁명을 영접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더 나은 차원의 산업혁명이 다가오는 순간 일자리를 비롯한 인간의 설 자리를 더 빼앗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염려가 사람들의 인식에 들어앉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심지어 ‘죄책감’으로 전환되기까지 한다. 4차 산업혁명과 기존의 각 산업혁명들이 일방적으로 찾아와 인간 소외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보다 편리한 것을 찾으려고 시도한 끝에 인간 소외 현상을 자초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상 틀린 말도 아니다. 산업혁명이란 것은 천재지변처럼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에 의해 선택되고 활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한 입장에서, 산업혁명의 산물을 마음껏 활용하는 것에 대해 은연중에 죄책감을 갖는 이도 있다.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인간이 해야 할 일을 대신 시키는 부분이나 에너지 지원을 더 소비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괜한 자책을 하는 이들이 있다. 가령, 3, 4층에 위치한 약속장소에 계단으로 걸어가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이런 생각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곳인데 운동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에 대한 자책, 에너지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낭비시켰다는 자책이 마음 한편에 스멀스멀 밀려온다고나 할까? 물론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이런 인식을 갖는다.
우리의 고민을 증폭시킬 사물인터넷
우리에게 찾아오는 위와 같은 고민들은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사물인터넷을 통해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편리함 그 자체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 사물인터넷인 만큼 사물인터넷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위의 현상은 더 빈번해지거나 심해질 것이다. 특별히 바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사물인터넷에 의존할 때마다 게을러진 듯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남모를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이러다가 정말 손 까딱 안 하고 일상이 해결되는 세상이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더해지면 자괴감은 더 커질 수 있다. 아니면, 아예 익숙해져서 조금의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세탁기를 사용하면서 ‘손빨래 대신 세탁기에만 의존하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문제의식을 못 느끼듯, 사물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날이 도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만큼은’ 사물 인터넷에 우리의 자리를 넘겨주어도 된다
사물인터넷은 사물에 일종이 센서를 부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주고받는 기술을 말한다. 물론 이전까지도 인터넷에 연결하여 사용하는 사물은 적지 않게 존재했는데,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찾아온 사물인터넷은 인간의 개입이 없어도 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산물들과 차이를 드러낸다. 즉, 이전까지만 해도 인터넷과 연결된 기기들은 특정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조작’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사물인터넷은 우리가 조작하지 않고도 알아서 수많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연결된 기기들 간의 소통이 우리의 개입 없이도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로 근거리무선통신(NFC)이나 블루투스, 센서데이터나 네트워크는 사물인터넷의 소통을 이끌어낼 기본적인 기술이 된다.
이렇게 ‘인간의 개입 없이도’ 알아서 잘 할 사물인터넷의 정체와 마주하는 순간, 앞서 언급했던 우려들은 더 커질 것이다. 정말로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더 커지는 셈이다. 그러나 사물인터넷에 대한 막연한 우려를 하기에 앞서, 대체하는 것과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물인터넷은 인간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대신 해 주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이 해결하지 못했던 ‘한계들을 극복해 주는’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막연하게 거부감과 우려를 갖기에 앞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부분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활용하자’는 마인드가 수반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가령, 이전에 등장했던 엑스레이를 예로 들어보자. 인간의 몸을 엑스선을 통해 들여다보는 이 의학 장치는 의학발달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몸을 치료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공헌을 했다. 인간의 눈과 손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을 알게 되었으니, 정확한 진단을 하고 그에 맞게 치료와 처방을 할 수 있게 되는 의술의 신세계가 열린 셈이다. 이처럼 특정 문명의 이기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주는 고마운 역할을 한다. 사물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물인터넷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었던 기존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육아와 사물인터넷의 만남’에서는 어떨까?
여기서 육아와 사물인터넷의 만남을 예로 들어보자.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도 할 수 있는 몇 년간의 양육 시기는 소중한 시기인 만큼 부모에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 육아에 사물인터넷이 도입된다면 어떨까? 사물인터넷이 부모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는 부분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위에서 다루었던 사실을 중심으로 생각을 한다면, 우선 두 부류로 나누어 육아와 사물인터넷의 만남을 바라볼 수 있겠다. 곧 ‘부모가 할 수 있는 일들 대신 하는 것’과 ‘부모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도와주는 것’의 구분이다. 만약 사물인터넷이 부모 대신 아이와 놀아준다면 그것은 전자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라면 사물인터넷에 완전히 의존했을 경우 말 그대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정말 지쳤을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익숙하게 사물인터넷에 아이를 맡겨버린다면 부모와의 교감을 나누는 것에 실패하는 등 인간 소외 현상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엑스레이를 통해 예를 들었던 것처럼, 사물인터넷이 사람(부모)이 절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적극 권장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이것은 사물인터넷의 가치를 확인하는 계기로도 이어지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의 한 IT기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분석하고 안면을 인식하여 감정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움직임도 감지해 위험 상황을 알려주는 사물인터넷을 내놓았다.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아기와 주변 환경을 모니터링한 후 부모의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분석된 울음소리에 기반을 두어 아기의 상태를 전달하는 것이다. 사실상 부모는 갓난아기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기가 어렵다.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울음 앞에서는 대책이 없다. 먹거나 자거나 배설하는 문제 중 하나일 것이라는 가정 하에 대처를 하지만 사실상 정확한 판단을 하기는 어렵다. 특히 이 세 가지 경우에서 벗어난 또 다른 문제가 있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애를 먹기도 한다. 표현이 불가능한 아기 앞에서는 아기를 그토록 사랑하는 부모도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의사에게 문의한다면 정확한 판단을 해 줄 수 있겠지만, 병원으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부모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사물인터넷이 울음소리를 분석하여 배고픔, 졸림은 물론 온도나 습도의 문제, 아프거나 불편한 문제 등을 인식해낸다면 이것은 ‘편리한 육아’를 위해 도입되는 차원이 아닌 절대적으로 필요한 육아의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실제로 아이의 불편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아기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 – 더 나아가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의 문제 – 를 불러일으키는 사례를 감안한다면, 이러한 사물인터넷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례는 사물인터넷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로잡게 해 줄 수 있다. 인간을 대체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지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는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인정한다면 조금 더 유연하게 4차 산업혁명의 산물들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