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5일 대법원은 이태원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만에 “아더 존 패터슨”(38)이 진범이라고 최종 결론을 내리고, 범행 당시 만 17세였던 그에게 법정최고형인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1997년 4월3일 밤10시경 패터슨은 친구들과 술을 먹다가 배가 고파서 서울 이태원 소재 패스트푸드점 “버거킹”에 들렀고 소지하고 있던 칼로 햄버거를 잘라 먹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친구였던 에드워드 리와 같이 화장실로 들어가 대학생 조중필(남, 당시 22세 홍익 대학교 학생)씨를 아무 이유도 없이 잭 나이프로 9군데나 찔러 살해했다. 너무나 순간적인 범행이었기에 조중필 씨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이들은 피범벅이 된 화장실을 벗어나 4층 술집 화장실로 가서 몸에 묻은 피를 닦았고, 이후 패터슨은 미국 제8군 기지로 들어가 바지를 갈아입고 피 묻은 옷을 불에 태운 후 범행에 사용한 칼을 버렸다.
패터슨은 4월 4일 누군가의 제보를 받아 출동한 미군 범죄수사대(CID) 요원에게 체포되었다. 4월 6일엔 미국 출장을 다녀온 에드워드 리의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 패터슨이 TV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고 아들을 추궁했으며, 아들이 범행을 시인하자 변호사를 만난 후 4월 8일 검찰에 자수했다. 사건발생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유력한 용의자들이 체포되었고 검찰에 압송되면서 사건은 쉽게 풀리는가 했지만 국내 사법당국의 허술한 처리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
먼저 둘은 서로에게 혐의 사실을 미루었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한 형사와 미군 범죄 수사대는 아서 패터슨의 온몸이 피투성이라는 점, 손에 미국 갱단의 마크가 있으며 살해 방법이 그 갱단의 수법과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패터슨을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이 사건의 수사를 담당한 검사는 피해자 조중필씨의 법의학적인 판단(부검결과)과 그들의 친구의 증언만을 근거로 에드워드 리를 용의자로 지목해 버리고는 에드워드 리만 살인죄로 기소하면서 사건은 완전히 꼬여버리게 된다.
당시 검찰은 에드워드 리를 살인범으로 기소하면서 여러 가지 근거를 내세웠으나 이 사건을 자체적으로 수사하던 전문가들은 검찰의 수사에 의문을 제기 하였다. 법의관들은 조중필씨의 몸에 난 상처를 토대로 조중필 보다 키가 큰 에드워드 리의 짓이라며 단언을 해버렸으나, 당시 조중필씨는 뒤에서 습격을 받았으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조중필 씨보다 작았던 패터슨이 충분히 위에서 찌를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을 그냥 흘려 버리고 말았다.
허술했던 점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거짓말 탐지기 수사 였는데 탐지기 결과 에드워드 리는 거짓으로, 패터슨은 진실로 나왔다. 하지만 1998년 당시 거짓말 탐지기가 도입된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점이라 신뢰도가 낮아서 30%가 넘는 오차를 보였던 문제가 있었고, 한국말이 서투른 에드워드 리는 조사과정에 통역을 요구했으나 묵살되었고 포승줄에 묶힌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았다. 반면 패터슨은 영어보다 한국어가 유창했기 때문에 에드워드 리 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거짓말 탐지기에서 가장 중요한 양쪽의 심리 상태마저 이렇게 서로 공평하지 않았던 엉터리 조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에드워드 리는 기소되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렸으나 대법원은 증거 불충분이라며 무죄를 선고 했다. 검찰의 예상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사건은 공중에 붕 떠버렸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에드워드 리에겐 죄를 다시는 묻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였다. 유족들은 또 하나의 용의자인 패터슨을 뒤늦게 다시 고소하지만 검찰은 패터슨의 출국금지 연장 시기를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망쳤고 패터슨은 한국 사법당국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미국내에서도 크고 작은 범죄들을 저지르며 현지 법원을 들락날락 거렸다고 한다.
이에 법무부는 미국 당국과 긴밀하게 공조하여 2011년 5월 패터슨을 미국에서 검거하였으나, 패터슨이 미국 법률상 모든 불복방법을 동원하여 송환을 지연시켰다. 법무부는 포기 하지 않고 미국 당국과 지속적으로 협력하면서 미국 법원에서의 소송에 적극 대응하여 왔다. 끈질기게 미 사법당국과 협상을 벌인 끝내 법무부는 결국 아더 패터슨을 용의자 신분으로 국내 소환하는데 성공했으며 재심을 거쳐 패터슨에게 징역 20년의 중형을 내리게 되었다.
사법기관의 헛발질로 일어난, 한국 사법당국의 흑역사로 남을 뻔 했던 이태원 살인사건. 분명히 용의자는 있는데도 미제사건으로 남은 황당한 사건으로 기록될 뻔 했던 이태원 살인사건은 이로써 20년이 지나고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20년이 넘게 속 앓이를 하며 패터슨의 유죄를 바랬던 조씨의 어머니는 징역 선고 결정후 터지는 울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조중필씨의 명복을 빌며 다음 세상에 태어나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길 소망했다.
이 사건은 장근석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이 된 바 있으며, SBS 탐사 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서 미국 현지로 날아가 패터슨의 가족들을 만나는 등 끈질긴 취재를 하여 국내에서도 관심이 많은 사건이었다. 이태원에 살고 있는 본 기자역시 이 비극적 사건이 결판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유가족의 억울함이 없도록 사법부는 사건에 신중에 신중을 가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법부는 만인에게 죄를 짓고는 살수가 없다는, 법 앞에선 누구든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초석으로 삼길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