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선율이 있다. “마마~ 우우우우~” 어쩐지 구슬프고 사연 있을 법한 엄마가 등장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마가 엄마인지 중전마마인지 상감 마마인지 중요하지 않다. 프레드 머큐리의 영감으로 실현된 선율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곧바로 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퐁당 엎어질 준비가 돼 있었다.
보헤미안은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을 의미한다. 이 지방의 사람들은 정착 대신 유럽 등지로 이주하게 되는데 외세의 침입과 가난이 이주의 주된 이유로 추측된다. 보헤미아 출신의 사람들이 이후 보헤미안이 되었고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 낯선 땅에 정착한 사람들만의 자유와 가난이 결합돼 그들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형성하게 된다. 이로 인해 지금도 보헤미안이라는 뜻을 몰라도 ‘보헤미안 스타일’을 외치게 되는 듯하다.
렙소디는 즉흥곡 혹은 광기의 음악이라 부른다. 프레디가 보헤미안 렙소디를 연주하며 자신의 혼신을 다할 때 그의 광기와 자유는 정점을 달리고 예술가와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뇌와 혼란에 대해 관객들은 그와 공감하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프레드 머큐리는 발전된 치아 교정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요즘 시대 같았으면 존재감을 뽐내는 구강구조를 천리 만리 밀어 넣을 수 있었지만 결국 치아는 프레드 머큐리의 유일한 콤플렉스로 남는다. 프레드가 ‘퀸’의 이름으로 지구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외모로 결코 승부를 볼 수 없는 가수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스타 프레드가 아닌 그를 사랑한 여자가 있었으니 그녀가 메리 오스틴이다. 프레드와 메리는 순탄한 연인의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프레드가 ‘퀸’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둘의 관계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무명 시절에도 자신을 지켜주고 여전히 프레드와 결혼을 꿈꾸는 메리에게 프레드는 더 이상 행복한 미래를 줄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한다. 그는 20대 중반부터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발견고 게이로서의 삶을 거부하지 않는다. 여러 명의 남자 애인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영화에서도 모든 자료에서도 그는 양성애자로 묘사된다. 남자 여자 구별 없이 그의 폭발적인 가창력만큼이나 열정을 불사지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레드의 복잡한 성정체성에 대해 누구보다 괴로운 사람은 프레드 자신이었다. 인도인의 문화적 뿌리를 가진 프레드는 엄격한 도덕 관념을 학습하며 자랐다. 잉후 그는 가족과 절연하면서 그의 삶을 고집스럽게 지켜 나간다. 생전에 프레드는 기자 회견을 통해 멀쩡히 생존하는 아버지를 ‘둘아가셨다’고 공언할 만큼 가족과 연결되는 것을 거부했다. 아마마 자신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집요한 보호본능으로 인해 그는 다소 독선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인도인으로서 가진 뿌리와 점점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게이로서의 삶이 불화를 이루면서 그는 스스로 쾌락의 늪으로 자신을 몰아 부친다.
뉴욕의 한 게이바에서 만난 헤어디자이너 짐 허튼에게 추파를 던지지만 프레드가 퀸의 프레드인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짐 허튼은 프레드의 허튼 짓에 냉랭한 반응을 보인다. 프레드의 외모가 의문의 1패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다른 게이바에서 재회하게 되고 프레드를 프레드로 완벽히 인지한 짐 허튼은 프레드의 비공식 애인이자 공식적 헤어디자이너로 프레드의 곁을 지키게 된다. 영화에서는 그의 존재감이 다소 떨어지게 묘사되었지만 짐 허튼은 프레드의 임종을 지키며 7억이 넘는 유산을 상속받기도 한다.
프레드의 사생활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필이 꽂혔다 하면 자신의 곁에 두었다. 한 남성을 매니저로 고용하며 비공식적 애인으로 삼는 한편 독일의 여배우와도 스캔들을 만든다. 그야말로 온탕 냉탕 가리지 않고 문어발도 울고 갈 연애를 즐긴다.
그래도 프레디의 마음에는 오직 한 사람 메리 오스틴에 대한 미안함과 우정 그리고 애정이 완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메리 오스틴은 프레드와 아이를 낳기를 원했지만 프레드는 거절했고 이후 메리는 다른 남성과 결혼하여 두 명의 아이를 낳지만 이혼하고 혼자 살게 된다. 프레드의 정체성으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은 메리의 삶에 대해 프레드는 아마 그녀에게 가부장적인 책임 의식도 느낀 듯하다. 단순히 한 때의 연인이 아닌 그녀의 일생의 한 부분에 대한 책임과 배려가 묻어 있었다. 자기가 거주했던 대저택을 그녀에게 상속하는 한편 자신의 음원 저작권을 메리에게 상속하기 이른다.
프레드의 몸은 타락을 거듭하지만 메리는 온전한 가정을 꾸리며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란 듯하다. 프레드 자신도 아마 메리와의 평범함을 꿈꿨지만 안타깝게도 신은 프레드 옆에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보헤미안 랩소디’로 점철되는 프레드의 음악의 자리만 남겨 두었다. 그는 음악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만 음악 안에 자신을 감춘다. 파괴적 본능은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을 남겼지만 인간적으로는 탐닉과 괴로움의 무게만 커질 뿐이었다. 고독한 천재의 일생이 그리고 성소수자의 번민이 ‘보헤미안 랩소디’에 잘 녹아 있다.
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
Mama, life had just begun
but now I’ve gone and thrown it all away
Mama, oooh – Didn’t mean to make you cry
If I’m not back again this time tomorrow
Carry on, carry on
as if nothing really matters
Too late, my time has come
Sends shivers down my spine
Body’s aching all the time
Goodbye everybody – I’ve got to go
Gotta leave you all behind and face the truth
엄마, 방금 제가 한 남자를 죽였어요.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 버렸어요.
엄마, 내 인생은 이제 시작인데
이미 다 망쳐버렸네요.
엄마의 눈물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아요.
만약 내가 다시 돌아오지 않더라도
엄마가 행복했으면 해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후회는) 너무 늦었어요. 때가 왔어요.
내 몸은 두려움에 떨고 있어요
안녕히… 난 떠나려고 해요
내가 저지른 진실에 숨지 않으려 해요.
– 의역된 해석임-
“내 인생은 이제 시작인데 이미 다 망쳐버렸네요”
프레드 머큐리의 고독과 슬픔을 얘기하는 듯한 노랫말이다.
자신의 성적 취향으로 인해 메리와의 결혼이 좌절되자 그는 자포자기하듯 엄마를 부르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권총으로 쏘아 버린 자신의 평범한 삶과 결혼 그리고 성정체성을 두고 메리의 행복한 삶을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따르겠다는 그의 진심이 숨겨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음악적 성공을 거두고 그의 예술 세계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수록 일회적이고 쾌락적인 관계에 집했지만 프레드의 삶의 중심에는 메리가 있었다. 그녀로 인해 잠시나마 불화했던 퀸의 멤버들과 화해하게 되고 재기에 성공하기 이른다. 그녀와 가정의 울타리를 짓지 못했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애정은 프레드의 외로운 삶의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프레드는 자신이 에이즈로 인한 투병이 알려지는 것을 끝까지 숨길 만큼 세상에 자신의 나약하고 쇠약해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사망 하루 전, 언론을 통해 에이즈 감염 사실을 공개한 다음날 한 편의 영화처럼 불멸의 퀸 프레드 머큐리라는 전설로 남게 됐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천재 예술가의 음악을 교감하는 시간이면서도 성소수자의 삶 속에서 자기 부정과 혼란으로 고통받은 프레드의 격정적인 삶이 불후의 명곡과 함께 이겨울, 우리 곁에서 ‘열정’으로 부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