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SOS어린이마을에 사는 지후(가명). 올해 4살이 된 지후는 얼마 전 새로 생긴 동생이 밉다. 막둥이 지후에게 쏟아졌던 ‘엄마의 사랑’을 빼앗겼다는 마음에 자꾸만 질투가 나 엄마의 팔을 물고 어리광이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동생을 향한 지후의 질투를 보는 마을가족들은 지후가 마냥 예쁘다. 이제야 온전히 지후가 ‘엄마’를 갖게 되었다는 안도였다. 지후는 몇 해 전 베이비박스를 통해 서울SOS어린이마을로 오게 된 아이다.
“우리 엄마”
서울SOS어린이마을은 단순히 가족을 잃은 아이들을 잠시 양육하는 곳이 아닌 평생을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인 ‘우리 엄마’를 만들어 주는 것에 의미가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 무엇보다도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길에서 넘어졌을 때 가장 먼저 “엄마”하고 울부짖지 않던가.
서울SOS어린이마을 허상환원장의 바람은 하나다. 아이가 엄마를 잃었던 아픔을 어린이마을에서 만나게 된 엄마와의 관계로 다시 회복하고 정말 ‘잘 자라는 것’. 잘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하여도 엄마와 마을과의 관계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독립하여 출가한다고 해서 엄마와의 관계가 끊기는 것이 아니듯.
마음을 먹는 일부터가 봉사의 시작
서울SOS어린이마을에서는 단순히 후원자, 봉사자의 개념보다는 어린이마을의 삶을 동참하는 ‘가족’을 추구한다. 획일적인 양육시설의 시스템과는 달리 가족의 의미를 실현하는 SOS어린이마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어린이마을의 이념의 실현을 위해 무언가를 ‘실천’하기에는 머뭇거리게 된다. ‘내가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피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아직은 내가 누군가를 도울 만큼 ‘잘 살고’ 있지도 않으니까.
허원장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봉사자를 여럿 봐왔다며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고 한다.
“봉사나 기부활동이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조금 나누어줄 뿐이죠. 그것이 무엇이든이요. 미용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미용봉사를 하고 기술이 있는 사람들은 시설 관리를 도와주고, 또 대학생들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거나 공부를 가르쳐요. 모두 훌륭한 봉사활동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의 것을 나누어 도움을 주고자 마음먹는 일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버리지 말고 여기에 두고 가세요.”
베이비박스(baby box)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산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작은 상자이다. 이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었다. 이것이 아기의 생명을 존중하기 위한 일인가, 막연히 부모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한 일은 아닌가에 대해서.
분명 생명을 버리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나 아이를 버리지 않았다고 좋은 부모일까?
그렇지 않다. 서울SOS어린이마을에 입소하게 된 아이들의 배경은 굉장히 다양하다. 부모에 의한 방임, 학대, 폭력등. 이것은 버려지는 아이들의 문제가 비단 베이비박스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의 희생자가 어린이들이 아닌가.
허원장은 말한다. “사회에서 생기는 아이들에 대한 문제는 이러한 사회를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성숙하지 않은 사회는 성숙하지 못한 모든 어른의 탓이다” 덧붙여 아이들의 미래는 우리 어른들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어른들의 미래도 이 아이들에게 달려있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불과 몇 달 전, 가슴 아픈 참사를 겪은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자랑스레 ‘어른 노릇을 하지 못한다. 언제까지나 고개를 숙인 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노력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할 미래를 만들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