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농사를 마무리 짓고 서울에서 분당으로 터를 옮긴 것이 92년.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던 노만호 대표는 문득 사회를 위해 일하겠노라, 결심한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의 마음으로
“내가 누구에게 도움받은 만큼, 이제는 내가 사회에 되돌려 주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다짐하자 처음 분당에 와서 느낀 막막함이 씻은 듯 사라졌다고 했다. 노만호 대표는 곧장 탤런트 임선택 씨를 필두로 사회 인사들에게 연락하여 지역 사회 이바지하기에 발 벗고 나선다.
그런 노력 끝에 1999년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지금의‘다살림복지회’를 설립하였다고.
현재는 방문 요양과 재가복지, 어르신 돌봄 세 가지 사업을 진행 중이며, 분당구 내에서만 110여 명의 홀몸노인을 돌보고 있다.
“내가 이 나이 먹으면서도 이렇게 뿌듯함을 느끼고 흥분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 합니다” 오히려 사회봉사를 하며 어르신에게 많은 것을 배워온다는 노만호 대표는 노익장(老益壯)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노인 복지뿐만 아니라 청소년 범죄예방에도 그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청소년범죄예방위원’이라 하여 검찰에게 재판받고 소년원 입소를 기다리는 소년범을 대상으로 개도 행위를 하는 것이다. 6개월 동안 많은 대화와 관심으로 좋은 쪽으로 유도하려 애쓰는데, 2범, 3범은 어렵지만, 초범의 경우에는 90% 이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불만보다는 발전적 마음으로
이런 긍정적인 모습도 있지만, 시설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도 많다고 그는 말했다.
지방자치에서 예산을 받아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노동의 대가에 비해 큰 금액은 아니라는 것이 사실.
또한, 어르신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예산이 부족하여 더 챙겨드리고 싶은 것을 못 챙겨드릴 때는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여름이나 겨울에는 예산안을 계획할 때, 어르신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순위로 철저히 고심한다고.
노인복지에 대한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노만호 대표의 생각은 남달랐다. 다른 대표들이 앞다퉈 노인복지에 관해 쓴소리를 하지만, 그는 마음으로는 당장 노인들의 혜택이 늘어나도록 정책이 펼쳐졌으면 좋겠지만, 예산 한계로 되지 않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비난보다는 애정의 시선으로 함께 나아가자며 다른 대표들을 다독였다.
“정부나 우리나 무엇이 다르겠어요?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모두 다 같이 사람 마음인데 뜻대로 안 될 뿐인 거죠.”
이어서 그는“지금 살아계시는 80~100세의 분들은 우리나라 산업사회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오시고 미래 자식들을 위해 일 하신 분들이신데,성장한 자식들은 나 몰라라 당연히 키워주는 것이었다 생각하세요. 나 하나 살기 힘드니까 외면해버리는 그런 모습을 보면 많이 안타깝습니다. 그런 모습을 조금이나마 줄이려면 역시 제가 더 노력해야 하겠죠.”
끝으로 큰 복지보다 부족한 것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복지를 바란다며 노만호 대표는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