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이모’를 불러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이모’는 뭐 하나 더 챙겨줄게 없나 이리저리 뒤져보다 다른 손님이 전해주고 간 먹거리를 꺼내 다른 손님들에게 나눠준다. 마치 인심 후한 어느 식당의 풍경 같겠지만 사실 이곳은 미용실이다. ‘헤어숍’이라는 그럴싸한 표현보다 ‘미용실’이란 단어가 더 친근하게 와 닿는 곳, 우미령 원장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이다.
대구 칠곡 대구과학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원헤어20000은 고객들에게 단순히 머리를 하러가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칠곡에서만 23년, 이곳 원헤어20000으로 미용실을 운영한 것만도 7년째다. 지리적인 특성상 학생들이 많이 찾는 이곳에서 우미령 원장은 그들에게 엄마이자 이모다.
원헤어20000을 방문하는 가장 오래된 고객은 우미령 원장이 칠곡에 터를 잡았을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23년 지기 단골이다. 지금은 칠곡을 떠나 타 지역에 거주하고 있지만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지금까지도 이곳을 방문해 머리 손질을 한다. 이렇듯 우 원장에게도 고객들은 그저 단순한 손님이 아니다. 직접 중매를 서 결혼을 성사시킨 커플이 있는가 하면 취업을 시켜준 고객도 있다. 학창 시절부터 방문한 고객들을 모두 내 자식처럼 여겨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 상담을 해준다.
서글서글하고 쾌활한 성격의 우 원장은 미용실을 찾는 고객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다. 이름을 물어보고 외웠다가 그들이 미용실을 다시 찾을 때는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맞아준다. 우 원장에게도 비슷한 또래의 남매가 있기에 그녀의 눈에는 미용실을 찾는 학생들이 모두 딸 같고 아들 같다. 그래서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먹을 것 하나라도 더 건네려고 노력한다. 그저 손님들의 환심을 사려는 겉치레가 아님은 누구보다도 고객들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이곳에는 주로 커트와 염색 시술을 하러 오는 고객이 많은데, 고객의 두상과 얼굴형에 가장 잘 어울리면서 손질하기 편한 스타일, 그리고 미용실에서 완성된 모습 그대로 집에서도 다시 연출하기 쉬운 스타일로 해주기 때문에 남자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집에서 염색을 시도했다가 망쳐서 오는 고객들도 자주 찾아오는데, 일반 염색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지만 고객이 원하는 색감을 100% 가까이 맞춰주기 때문에 원헤어20000을 방문한 고객들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다.
이렇게 단골이 된 고객들은 우미령 원장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서 이제는 원하는 스타일만 제시하고 전적으로 우 원장의 손에 맡긴다. 고객을 보자마자 두상과 얼굴형이 스캔되어 머릿속으로 스타일링에 대한 설계가 그려진다고 하니 역시 30년 경력의 베테랑답다. 커팅을 할 때도 오래도록 시간을 끌기보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머릿속에 그려진 스타일대로 그녀의 손을 이끈다. 단골 남학생들이 여자 친구나 어머니의 손을 이끌고 함께 방문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하니 고객들이 우 원장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처음 원헤어20000 매장에 들어섰을 때 눈에 띈 건 마치 카페처럼 창가를 따라 배치된 소파와 테이블이었다. 원래는 제품 진열 용도로 만들었던 공간을 고객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바꾼 것이라고 한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처럼 근사한 에스프레소 머신은 없지만 얼음이 나오는 정수기를 구비해 학생들이 시원한 냉커피라도 한잔 마실 수 있게 한 우 원장의 마음은 소박하기에 더 따뜻하다.
이곳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또 하나는 미모의 디자이너였다. 훤칠하고 늘씬한 몸매에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는 알고 보니 우미령 원장의 딸이었다.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평소 손재주가 좋았던 그녀는 승무원의 길을 걷다 미용으로 방향을 선회해 우 원장의 뒤를 잇고 있다. 지금은 자신보다 딸에게 시술받고 싶다는 학생이 더 많아졌다며 우 원장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우미령 원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객과의 사소한 마찰조차 없었다고 말하며, 좋은 분들만 오는 것 같다고 겸손히 말하지만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정이 고객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의 마음까지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학생들에게 늘 베풀고 살라는 조언을 한다는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경로당 노인들을 모셔서 아주 적은 비용만 받고 이발을 해드리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미용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싶다는 우 원장은 미용을 배우겠다고 숍에 들어와서 중도에 포기하거나 일정 수준의 기술만 습득한 채 그만두는 사람들을 볼 때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미용은 긴 호흡을 가지고 가야 하는 만큼 끈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하며, 빨리 무언가를 이루려는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고 긴 시간에 걸쳐 꾸준히 배우겠다는 마음가짐만 갖고 있다면 미용을 가르쳐달라고 찾아와도 얼마든지 환영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