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 허덕이는 요즘 돌파구 중 하나로 피부관리사자격증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한 피부관리 분야는 바닥을 헤매는 우리나라 취업실정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각처에서도 유용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 자격증이 이전부터 국가공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90년대 의료업계는 미용을 의학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부관리자격증의 공인은 이에 맞섰던 미용 1세대들이 힘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당시 금단비가 오산점의 이보연 원장은 미용업계에 놓인 부당한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에 피부미용업을 먼저 시작한선배로서 피부미용국가자격증을 취득해 피부미용인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첨병으로 나선 것이다.
1984년 압구정 미가람케어에서 첫 걸음을 내딛고 국내 피부미용의 청사진을 그렸던 그는 업계에 대한 대중적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피부미용의 도약을 위한 물꼬를 틀기 위해서라도 나라의 인정이 우선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에 그는 데모현장의 선두에 서서 국회 앞에서 많은 피부미용인과 함께 수도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열정을 기울였고 피부미용국가자격증 인증의 쾌거를 이뤄내는 데 일조했다. 피부미용산업의 위상을 높이려면 끊임없는 연구와 국제적인증자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본인부터 1991년 국제 시데스코 피부미용자격증을 취득한 것이다.
그는 피부미용인의 한사람으로 피부미용산업발전과 저변 넓히기에 힘써 초대경기피부미용실기대회및전국미용실기대회PD ,학술세미나주최 등의 참여를 이어왔으며 초창기 피부미용모임지역장부터 시작해 7, 8대경기도지회장, 피부미용중앙회 이사와 감사을 역임했다.
피부미용에 대한 교육이나 새로운 피부미용기기 도입에 따른 연수라면 유럽과 아시아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았던 열정이 지금도 피부피용 현장을 지키는 30년 장인의 역사를 만들어 온셈이다.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며 “이를 추격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이 원장은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를 지금의 자리에 서게 한 원천은 다름 아닌 능동성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피부미용관리사협회 경기도지회7, 8대 회장 역임 시 중앙회 못지않은 부스유치로 화제를모으기도 했던 그는 모든 준비와 부스유치 진행을 오르지 피부미용인끼리 협동하여 치뤄냈던 당시가 가장 보람되었다고 회상한다.
향후 업계의 방향타는 “건강에 무게를 실릴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미용은 건강과 뗄 수 없는 면모가 많다. 이를 위해 이 원장은 최근 전통 골기법 브랜드인 금단비가를 런칭했다.
금단비가만의 전신교정기법으로 발전시킨 이 비법과 함께 심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에 한 몫을 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