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은 국민 모두가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한 해였다.
박지성 선수의 멋진 골로 16강에 진출한 기쁨이 있던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있기 하루 전날, 대부분의 국민들은 월드컵 응원을 준비하고 경기를 기대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월드컵의 기쁨의 눈물이 아닌 말로할 수 없는 슬픔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부모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신효순 양과 심미선 양은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평소에 다니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도로 폭 보다도 넓은 미군의 탱크가 길을 걷고있던 소녀들을 미처 피하지 못한채 덮치고 말았다. 그리고 두 소녀는 그렇게 하늘 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쾌거의 열기 때문에 자칫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건을 접한 사람들과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사건은 수면아래로 가라앉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부주의로 일어난 이 끔찍한 사건은 한미 주둔군 지휘 협정(SOFA)으로 인하여 두 소녀의 가족들을 더 슬퍼하게 만들었다. 규정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정부는 미군을 수사할 수도 어떠한 처벌을 할 수 도 없었다. 결국 수사권과 재판권을 포기하지 않은 미국에 의해 보상은 이루어 졌지만, 사건의 가해자인 미군에 대해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국민들이 분노하여 반미감정이 들끓고 시위가 이어졌다. 하지만 판결은 바뀌지 않았고 정확한 사건 정황도 미국의 발표 외에는 알 수 없었다.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 넘은 시간이 지나서야 SOFA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두 소녀의 죽음은 너무나 가혹하게 받아들여진다.
2007년 샘물교회 사건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외교적인 문제로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기에 외교부에서 경고를 한 아프가니스탄 지역으로 샘물교회는 선교를 떠났다. 정부에서 비행기 티켓을 강제로 취소했지만, 결국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활동을 떠났다. 외교부는 전용기를 보내어 귀국을 권유했지만 이 마저도 그들의 발걸음을 돌려세울 수 없었다.
결국 샘물교회는 예정대로 선교 활동을 진행하다가 탈레반에게 억류되고 말았다. 철군을 요구하는 탈레반과 외교부의 협상이 이어지는 중에 탈레반의 무자비한 참수로 두명의 국민이 살해당했다. 이에 결국 국가가 600억 가량의 금액을 주고 협상하여 피랍된 국민들은 풀려날 수 있었다.
이때 샘물교회와 유족들, 당사자들의 태도로 인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 때문에 죽은 생명에 대한 위로보다는 옳고 그름의 잣대로만 사건이 평가되었다.
왜 생명의 가치가 평가의 대상이 된 것일까. 왜 생명의 존귀함을 놓고 이익을 따지며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을까.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한 네티즌이 올린 글에 의하여 평화적인 촛불 시위로 번지게 되었는데 당시 예상치 못한 인원들의 유입으로 서울시 광장은 마비를 앓을 정도였다. 반면에 샘물교회 사건으로 인해서는 인터넷 상에서의 뜨거운 설전으로 각종 커뮤니티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본질이 아닌 껍질에 의해 평가하고 평가받는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있는 사회는 아닐까.
국제 정세와 더불어 국내 정세까지 어렵고 혼잡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제는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